좋은 글
-
[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⑩ 예수는 어떻게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나좋은 글 2016. 3. 23. 09:54
http://news.joins.com/article/19766920 [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⑩ 예수는 어떻게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나 기자백성호 기자 늘 물음표다. 예수는 어떻게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을까. 그건 역사적 사실일까, 아니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비유일까.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첫 이적’을 보인 마을은 ‘가나’다. 갈릴리에서 가나까진 멀지 않다. 자동차로 불과 20분 거리다. 자동차를 렌트했다. 갈릴리 호숫가인 티베리아스에서 77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갔다. 스마트폰의 구글 지도가 내비게이션 기능까지 제공해 운전은 어렵지 않았다. 77번 도로는 널찍했다. 차들은 쌩쌩 달렸다. 갈릴리 호수 주변의 산 위로 올라갔을 때 펼쳐지는 고원 풍경이 장관이었다. ‘갈릴리’하면 호수만 떠올랐는..
-
[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⑧ 예수, “천국은 네 안에 있다.”좋은 글 2016. 3. 9. 10:05
http://news.joins.com/article/19692872 [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⑧ 예수, “천국은 네 안에 있다.” 백성호 기자 사진 크게보기팔복교회의 공기는 평안하다. 언덕 아래 갈릴리 호수가 보이고, 주위에는 꽃과 나무가 가득하다. 팔복교회의 뜰은 파랬다.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야자수를 비롯한 키 큰 나무들도 곳곳에 서 있었다. 한낮의 볕은 따가웠다. 나무 그늘 아래에는 순례객들이 묵상에 잠겨 있었다. 그들의 무릎에는 성서가 펼쳐져 있었다. 하나 같이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산상수훈’ 대목이었다. 사진 크게보기이스라엘의 한낮 햇볕은 따갑다. 순례객들은 나무 그늘을 찾았다. 거기에 앉아 저마다 묵상을 했다. 저 푸른 풀밭 어디쯤에서 예수는 말했다. 행복하여라, 자비..
-
평온을 위한 기도문좋은 글 2016. 3. 7. 17:45
평온을 위한 기도문 by Reinhold Niebuhr 하느님 제가 변화시킬수없는 것들은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수 있는것들은 변화시킬수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가지를 구별할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하루하루를 살아 내게 하시며순간순간을 즐기며 살게 하소서.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이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을주님께서 그대로 받아 주셨듯이저도 이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제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하나님께서 모든 것을바르게 인도하실 것을 믿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의 삶에서합당한 행복을 누리고다음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영원히 최상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
죽음에 이르는 본래적 존재 : 선구좋은 글 2015. 10. 12. 15:51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해제) 죽음에 이르는 본래적 존재 : 선구 [ 先驅 , Vorlaufen, Anticipation ] 죽음에 직면해서 회피하는 것이 '죽음에 이르는 비본래적 존재'이다. '죽음에 이르는 비본래적 존재'가 일상적 현존재의 존재양식을 특징짓는다. 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죽음에 이르는 비본래적 존재'가 일상적 현존재의 존재양식을 필연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상적 현존재는 실존적 변양을 통해 본래적 현존재로서 실존할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일상적 현존재의 실존적 변양이 가능한 까닭은, 비본래성이 이미 그 근저에 본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죽음에 이르는 비본래적 존재'의 근저에는 이미 '죽음에 이르는 본래적 존재'가 은폐되고 왜곡된 채 도사리고 있다..
-
마스시타 고노스케 '인생과 일의 의미'좋은 글 2015. 7. 22. 13:55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 그 길은 하늘이 내려준 고귀한 길이다. 어떤 길인지 알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이 걸을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은 넓을 때도 있고 좁을 때도 있다. 오르막길도 있으며 내리막길도 있다. 평탄할 때도 있는가 하면 땀이 날 정도로 험할 때도 있다. 이 길이 과연 좋은 길인지 나쁜 길인지 고민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위로해주기를 바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갈 수 있는 길은 이 길뿐이지 않은가?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서 있는 이 길, 지금 걷는 이 길, 어쨌든 이 길을 쉬지 않고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만이 걸을 수 있는 소중한 길이 아닌가? 자신에게만 주어진 둘도 없는 길이 아닌가? 타인의 길에 혹해 고민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