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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29장 장이.진여열전
장이(張耳)는 대량(大梁: 魏都, 河南省) 사람이다.
그가 젊었을 때에는 위(魏)의 공자(公子) 무기(毋忌: 信陸君)의 빈객이
된 적도 있었다.
장이는 망명해 외황(外黃)이라는 곳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부잣집 딸로서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용렬한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가 남편한테서 도망쳐 와 아버지의 빈객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빈객은 본래부터 장이의 인간됨을 잘 알고 있었던 터였으므로
그는 여인에게 넌지시 말했던 것이다.
"그대가 실로 어진 남편을 구하고 있다면 장이를 따르는 것이
좋지......"
여인은 마침내 남편과 헤어지고 장이한테로 시집을 갔다.
장이는 여전히 백수건달이었으나 여인의 집에서 후하게 돈을 대 주었기
때문에 천리의 먼 곳에 있는 인사들까지도 사귈 수가 있었다.
그래서 어렸을 적 위(魏)공자 무기(無忌: 信陸君)를 추종하여 빈객이
되었던 인연으로 장이는 외황의 수령이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그의 현명한
이름은 더욱 높게 드러났었다.
진여 또한 대량 사람으로서 유자(儒子)의 학문을 좋아하여 조나라
고형(苦형: 河北省)이라는 곳을 자주 드나들었었다.
부자인 공승씨(公乘氏)가 진여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그의 사위로 삼았다.
그래서 장이와 진여는 서로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게 되었다.
진나라가 위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장이와 진여가 위의 명사임을 알고
일천 금의 보상을 목에 걸어 두 사람을 찾고 있었다.
별수없이 장이와 진여는 이름을 바꾸어 진(陳)으로 가서 성문의 문지기
노릇을 하며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어느 날 높은 관리가 성 앞을 지나가다가 진여가 한눈을 팔아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소한 일로 매질을 하게 되었다.
진여가 발끈해 대들려고 했는데 장이가 얼른 진여의 발등을 밟아 이를
만류했다.
"군소리 없이 얻어맞게나!"
관리가 떠나가자 묵사발이 되도록 얻어맞은 진여를 뽕나무밭으로 데려간
장이가 몹시 꾸짖었다.
"애초의 우리 약속이 뭐였나. 때가 이를 때까지 몸소 굴욕을 참자고 하지
않았나. 그래 관리 한 놈 죽이고 자신도 탄로나 함께 죽고자 했어?"
"내가 몹시 어리석었네!"
하급관리인 문지기라는 직책이 그들의 신분을 감추기에는 매우
안성맞춤의 직위였다. 때로는 자신들을 현상금까지 걸고 찾는다는 방문을
몸소 성문에다 걸기까지 하였다.
진섭(陳涉)이 기(기) 땅에서 봉기해 진(陳) 땅에 이르렀는데 그 군대가
수만에 달했다. 이 때 장이와 진여가 이름을 디밀고 진섭을 만났다. 진섭은
평소 두 사람이 현명함을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반갑게 대했다.
그런데 진 땅의 많은 호걸들과 부로(父老)들이 진섭(陳涉: 혹은
陳勝)에게 한결같이 초왕이 되기를 권하고 있었으므로 진섭 역시 장이와
진여가 같은 조언을 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장이와 진여의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저 무도한 진나라는 남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사직을 없애며 후세를 끊고
백성의 힘을 피폐케 했습니다. 이럴 때 장군께서는 한 눈 크게 부릅떠
담력을 펼치시어 만 번 죽어도 구차히는 살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워 천하를
위하여 잔학한 진나라를 제거하려 나섰습니다. 이런 때에 왕이 되신다면
천하에 대하여 사심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왕이 되실 게 아니라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해
육국에 사신을 보내어 그 후손들로 하여금 오히려 왕이 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뭐요!"
진섭은 볼멘소리로 물었다.
"이익을 원하신다면 오히려 더욱 큰 이익이 돌아오지요. 보십시오.
장군께서 여섯 나라를 세움으로써 진나라에 대해서는 적을 만들어 놓는
것이 됩니다. 적이 많으니 진의 힘은 분산되게 마련이고 이쪽의 당파가
많으므로 그 군대는 강해집니다. 이같이 하여 들에는 싸우는 군대가 없고
현에서 수비하는 성책이 없게 되면 저 포악한 진나라를 주멸하고 드디어
함양에 웅거하여 제후들을 호령하십시오. 원래 망하였다가 장군의 은덕으로
다시 서게 된 나라이니 장군의 덕으로써 그들을 복종시키면 그 때는 진정한
제업(帝業)을 이룩할 수가 있습니다."
진섭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대단히 소견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진중(陳中)의 호걸들과 원로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저를 일컬어, 장군은 몸소 갑옷을 입고 무기를 잡은 채
사졸을 거느려 저 포악한 진나라를 주멸하여 초나라의 사직을 다시 세워
끊어진 제사를 잇게 했으니 그 공적은 왕이 되기에 충분하다 하였소이다."
"기껏 초나라의 왕이십니까."
"천하평정이란 한 치 앞의 미래를 알 수 없는 구름잡는 얘기일 따름이오.
이런 차제에 초왕이 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며 나쁘다는 것입니까."
"저희들의 근심은 장군이 진 땅의 왕이 되심으로 해서 천하분열의 시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진섭은 결국 장이와 진여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립해 진(陳: 河南省)을 본거지로 초왕(楚王)이 되어 국호를
장초(張楚: 楚國을 擴張했다는 뜻)라 불렀다.
진섭은 제장을 각지에 파견해 그 지방을 산하에 복종토록 요구했다.
산동(山東)의 군현 지사들이 진의 관리 밑에서 고통당하고 있었으므로
때맞추어 군현의 관리들을 살해하고 속속 진섭 밑으로 호응해 들었다. 그
군사의 수는 삽시에 수십만으로 불었다.
장이 진여의 예언대로 혹은 각자 자립해서 후(侯) 혹은 왕(王)이라
칭하며 합종해서 서방으로 진출해 진을 포멸한다는 명분으로 독립하는 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한편 진여는 진섭에게 계책을 올리고 있었다.
"왕께서는 함곡관 안을 침공하는데 힘쓰시느라 아직 하북의 땅을
거두어들이지를 못했습니다. 신이 일찍이 조나라 땅을 편력한 적이 있어
그쪽의 지형과 인걸들에 대해 밝기로 특공대를 거느려 북쪽 조나라 땅을
경략할 것을 청합니다."
"좋은 계략이오. 예부터 내 친구인 무신(武臣: 사람 이름)을 장군으로
삼고 소소(邵騷)로 호군(護軍)을 삼겠소. 그리고 장이와 그대 진여를 좌우
교위로 삼아 삼천 명의 사졸을 줄 터이니 북쪽을 공략해 보겠소?"
"반드시 공을 세우겠습니다."
그렇게 되어 무신 등은 백마(白馬)를 거쳐 하수를 건너 현들에 이르러
호걸들에게 이처럼 설득했다.
"진나라는 혼란한 정사와 가혹한 형벌로 천하를 잔혹하게 다스려 온 지가
어언 수십 년이오. 북쪽으로는 만리장성을 쌓는 대공사를 벌였고
남쪽으로는 오령(五嶺: 大庾.始安.臨賀.桂陽.揭陽등 湖南.廣東省의 五山)을
수비하느랴 안팎으로 백성들은 피폐하였소. 게다가 키질하듯 민가의
재물들을 군비로 싹 쓸어 갔으니 기진맥진한 백성들은 이제 더 삶을 이어
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가혹한 법과 준엄한 형벌로
백성들을 무겁게 눌러 천하는 부자(父子) 사이에도 서로 안녕을 보장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때에 진왕은 팔뚝을 걷어붙여 천하를 위해
앞장서 초나라 땅에서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러자 사방 2천 리의 땅에서
이에 호응하지 않는 곳이 없이, 집집마다 스스로 노하고 사람마다 싸움을
준비하며 저마다 원한을 갚고 원수를 공격하였으므로 현의 영승(令丞)은
죽고 군의 수위(守尉)는 살해되었습니다. 고로 지금에 이르러서 대
초나라의 세력을 확장시켜 진 땅에서 왕위에 오르시어 오광과
주문(周文)으로 하여금 백만 군사를 주어 진나라를 공격토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제후에 봉함을 받는 업적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호걸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한번 상의해 보십시오. 천하의
형세에 힘입어 무도한 군주를 공격하고 부모의 원한을 갚고 땅을 할양받고
토지를 차지하지 않으시려는지요."
그런 한편으로 무신 등은 동북쪽으로 향하여 범양(范陽: 河北省)을
공격했다.
그 때 범양 사람인 괴통(괴通)이 범양의 영(令)을 찾아갔다.
"공께서 곧 죽으려 하신다기에 듣고서 조문하러 왔습니다."
영이 놀라서 되물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나를 조문한다니 무슨 말이오."
"진나라의 잔혹한 법을 공께서는 아시지요. 공께서 영(令)이 된지 십여
년에 백성의 부모를 죽이고 백성의 아들을 고아로 만들고 백성의 다리를
끊어 놓고 백성의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등 잔혹한 형벌을 수없이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자애로운 아버지와 효성스런 아들이 그 동안 공의
뱃가죽에 비수를 꽂지 못했던 이유는 진나라의 법을 두려워해서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천하는 크게 혼란되어 진나라 법이 지켜지지
않으니 이제사 공을 죽여서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신이 공을 조문하러
온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저를 무신에게 공의 이름으로 파견하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되겠소?"
"이제 이 괴통을 만나심으로 인해 살아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괴통은 자신만만했다.
영의 이름으로 괴통은 사신이 되어 무신을 찾아갔다.
"장군께서 전쟁의 승리로 땅을 경략하거나 공격하여 성을 함락시키려
하신다면 계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 찾아왔습니다."
"그건 왜 그렇소?"
무신이 물었다.
"범양의 영은 사졸들을 독려해 마땅히 전투준비를 시켜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떨고만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소?"
"겁이 많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탐욕스러워 지위만
유지되면 제일 먼저 항복할 그런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항복하지 않고 있지 않소."
"장군께선 십여 개 성을 빼앗아 오면서 성주들을 어김없이 죽였지요."
"그랬었소."
"그것이 그의 두려움입니다. 그는 진의 관리니까요. 그의 두려움은 또
있습니다. 진나라의 혹독한 법으로 희생된 많은 무리들이 봉기해 자기들의
영을 죽인 뒤 또한 장군께 저항하겠다는 기미를 느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전쟁준비도 항복도 못 하고 있소?"
"그런 형편이니 진퇴양난이지요."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옳을지 그 계책을 주겠소?"
"아주 간단합니다. 장군께서는 항복할 것입니다. 무리배들도 장군이
두려워 영을 죽이지 못할 것이고 말입니다."
"항복해 온다면 그대의 공으로 돌리겠소."
"영이 항복해 오면 그가 탄 붉은 수레에 한껏 화려한 장식을 해서 연나라
땅과 조나라 땅의 교외를 달려 지나가게 하셔야 합니다."
"그건 또 왜 그렇소."
"항복하고자 하나 역시 죽을 것이 두려운 많은 성주들이 영의 처지를
보고 기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만 하시면 연.조의 성은 싸우지
않고서 항복해 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씀드린 바대로 격문을
포고함으로써 천리 바깥의 적도 평정시킬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대의 계략대로 해 보겠소."
무신은 괴통의 계책을 범양의 영에게 제후의 인을 하사했다. 과연 괴통의
말대로 영은 무신에게 항복을 청해 왔다.
뿐만 아니었다. 조나라 땅에서 영의 입지가 소문나자 항복을 자청한 성이
30여 개나 되었다.
무신의 군대가 한단(한鄲: 逍都, 河北省)에 이르러 진섭의 주력부대인
주장(周章)의 군사갈 벌써 함곡관을 넘어 희(희: 陝西省)땅까지 접근했다가
퇴각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장이와 진여는 진섭에 대하여 심기가 불편했다. 자신들의 모책을
사용하지 않았고 장수로 삼지도 않았으며 기껏 교위라는 들러리로 따라붙게
한 것들이 그것이었다.
장이와 진여는 무신을 부추겼다.
"지금 진(陳)왕은 기 땅에서 봉기한 뒤 진 땅에 이르러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에게 과거 육국의 계승국을 세우려는 의도는 없을 것입니다.
장군께선 지금 삼천의 군대만으로 조나라의 수십 성을 항복받아 홀로 하북
땅에 우뚝 웅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장군께서 왕위에 즉위해
이 곳을 진정시키는 게 좋습니다."
"내가 왕으로?"
"진왕의 인품은 측근의 중상모략을 곧바로 들어 버리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장군께서 귀환해 화를 입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나의 등극이 무모한 항명이 아닐까요."
"왕이 되든 개선장군으로 귀환하든 책임을 물을 건 마찬가집니다. 부득이
하다면 형제라도 왕위에 세우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조나라의
후손을 세워도 괜찮습니다. 아무튼 장군께선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지금은 숨 한번 돌릴 틈도 없는 시기입니다."
"진여께서 대장군, 장이께서 우승상, 소소로서 좌승상이 되시어 저를
도와 주신다면 조왕이 되겠소......"
무신이 조왕이 된 후 이런 사실을 진왕에게 알렸다. 아니나다를까 진섭은
크게 노하여 무신 등의 가문을 몰살하고 군대를 일으켜 금세 조를 치고자
하였다.
그 때 진와의 상국인 방군(房君)이 간절히 간했다.
"아니되십니다. 진나라가 아직 멸망도 하지 않았는데 우군의
집안식구들을 처단하다니요. 이는 또 하나의 진나라를 만들어 우리를
힘겹게 하는 짓입니다. 차라리 무신의 조왕 등극을 축하해 주시고 서쪽으로
진격해 진나라를 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입니다."
진왕은 그럴 듯하게 생각되어 방군의 계책에 따라 무신 등의 식구들을
궁중으로 옮겨 구금시키고 장이의 아들 장오(張敖)를 성도군(成都君)에
봉했다.
진왕이 조나라로 사자를 보내 왔다. 축하를 전하고 서둘러 함곡관으로
진격할 것을 재촉했다.
그러나 장이와 진여는 무신에게 설득했다.
"진왕이 대왕을 조왕으로 인정한 것은 그의 본뜻이 아닙니다. 계책에
따라 대왕을 축하해 온 것뿐입니다."
"그것은 어째서 그렇지요?"
"초나라가 진을 멸하고 나면 반드시 조나라를 침공할 것입니다. 그런
사정이니 왕께선 서쪽으로 진격하는 대신 차라리 북쪽의 연과 대(代)
지방을 치고 남쪽의 하내(河內)를 거두어들임으로써 영토나 넓게
만드십시오. 조나라가 남쪽 대하(大河)를 근거로 하고 북쪽 연.대 지방을
차지하면 나중에 초가 비록 진을 정복하더라도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는
못하게 됩니다."
사신을 돌려보낸 뒤 조왕은 군대를 서쪽으로 진출시키는 대신
한광(韓廣)에게는 연지방을, 이량(李良)에게는 상산(上山)땅을,
장염(張염)에게는 상당 땅을 공격하도록 했다.
그런데 한광이 연 땅에 이르자 장이.진여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사태를 맞은 것이다. 연 땅의 사람들은 아무 저항 없이 장군 한광을
연왕으로 세운 것이다. 별수없이 조왕은 장이.진여와 더불어 북쪽으로
진격해 연 땅 내에서 더 북쪽 지점을 노렸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또다시 생겼다. 한광을 믿고 몰래 적정을
정탐하러 나섰던 조왕 무신이 연군한테 사로집힌 일이다.
장이와 진여는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연의 장수는 조왕을 가두어 두고
조나라땅을 반분해 주면 왕을 돌려보내 주겠다고 했다.
- 어떻게 그런 요구를 우리에게 할 수가 있는가. 국토의 분할은 왕의
고유 권한에 속하니 그대들이 인질로 잡고 있는 조왕에게 요구하라.
사자에게 편지를 주어 연으로 보내면 연나라에서는 사자만 죽일 뿐
조왕은 여전히 돌려보내 주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죄없는 사자만 벌써 열
명이나 죽어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를 어떻게 한다?"
장이와 진여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군사를
진격시킬 수도 없었다. 조왕이 위태롭기 때문이었다.
이 때 잡일을 하는 병사 하나가 막사의 동료에게 혼자말처럼 내뱉는
것이었다. 진진(陳進)이라는 젊은이였다.
"그까짓 일을 가지고......나를 보내 주면 금세 조왕을 수레로 모시고 올
터인데."
진진의 말을 들은 막사 동료들은 비웃었다.
"자네 미쳤구나. 가는 사신마다 족족 죽어 갔는데 네가 무슨 능력으로
대왕을 모시고 돌아와."
"내기를 걸어도 좋아."
"그래, 내기를 걸자. 넌 얼마를 걸 테냐."
"내 목을 걸 테다."
"그렇겠지. 아예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그대신 너희들 주머니돈 모두 걸어라."
"오백 전(錢)은 될 거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네 목이 불쌍하다.
지금이라도 취소할 수 없겠는가."
진진은 대꾸도 않고 연나라 성벽 쪽으로 달려갔다.
진진은 성루 쪽에다 대고 소리질렀다.
"조왕을 붙잡고 있는 장군을 잠깐만 뵙게 해 주겠소?"
"이놈아, 너도 죽고 싶어서 왔느냐."
"나를 겨누고 있는 쇠뇌를 벌써부터 보고 있소. 천천히 죽여도 늦지 않을
테니 우선 장군을 뵙게 해 주시오. 중요한 정보가 있어서 그럽니다."
효과가 있었던지 경비병이 사라진 후 연의 장수 하나가 성루에 나타났다.
"넌 무엇하는 자냐."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장군은 아십니까."
"물어 보나마나 너의 왕이겠지."
"장군께선 장이와 진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천하의 모사(謀士)라 들었다."
"그들 두 모사가 내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자기들의 왕을 데려가고 싶은 게지."
"장군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무어라고?"
"장이와 진여는 말채찍 한번 휘두르지 않고 조나라의 수십 개 성을
함락시킨 사람들입니다. 작은 나라의 일개 경상(卿相)에 머무를 포부가
작은 사람으로 보셨습니까."
"무슨 뜻이냐."
"신하와 왕은 그 지위가 다릅니다. 당초 조나라의 세력이 안정될
무렵에는 나라를 삼분할 수가 없어 연장자인 무신을 앞세워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선 조왕을 어서 죽여 주어야 그들이 조나라를
반분해 왕이 될 텐데 조왕을 인질로만 잡고 있으니 그들은 몹시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조왕의 반환을 요구해 왔었다."
"그야 명분 만들기죠. 조왕이 장군에 의해 죽기만 해 보십시오. 그들은
금세 나라를 반분해 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개의 조나라도
연나라쯤이야 우습게 보는데 두 조나라가 합심해 연나라를 치면 하루
아침에 연나라는 멸망해 버립니다."
"......나더러 어쩌란 얘기냐."
"멸망의 명분을 두 사람에게 만들어 주시든지 아니면 조왕을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제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은 곧 이 곳으로 출격합니다."
진진은 조왕을 수레에 태우고 말고삐를 잡아 귀국했다.
한편 이량(李良)은 상산 땅을 평정하고 돌아와 조왕에게 보고했는데 다시
태원(太原)땅을 공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후읍(后邑)에 이르렀을 때였다. 진나라 군대가 정형(井형) 땅을 완강하게
가로막아 더 이상 진전할 수가 없었다.
즈음에 진나라 장수 하나가 2세황제의 명이라는 편지 한 장을 이량에게
보내 왔다.
- 그대는 일찍이 짐을 섬기어 현직을 받고 총애를 누렸다. 그런데도 짐을
배반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만일 조나라를 버리고 진나라로
돌아온다면 기왕의 배신을 불가피한 사정이라 치부하고 그대의 죄를 사면해
더욱 귀하게 해 주겠노라.
"황제의 옥새는 찍혔지만 편지는 봉해지지 않은 게 아닌가."
이량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수하도 이량에게 간했다.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장군을 귀속시키기 위한 진나라의 계략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이로웁겠는가."
"칙서는 믿지 마십시오. 누군가가 2세황제를 사칭한 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태원 땅을 공략할 수가 없으니 일단 한단으로 돌아가
증원군을 신청하십시오. 그런 후 다시 진나라에 대항하셔야 합니다."
이량은 진나라의 현령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진나라를 배반하는 입장에
처해져 있었지만 한편으론 가짜 칙서를 믿고 싶어하는 일면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입장에서는 정세가 오리무중이었으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수하의 간언만 따를 뿐이었다.
"그렇다면 별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일단 한단으로 돌아가
보자......"
그런데 한단 도착 십여 리를 앞두고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백여 기의 기마병들이 따르는 호화찬란한 어가(御駕) 한 대가 옆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뉘신가?"
이량이 묻자 수하가 대답했다.
"왕의 행렬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예를 다할 일이다. 내려서 길에 엎드리겠다."
이량은 그렇게 했다.
그들 일행은 이량 군대행렬의 허리를 끊어 지나가고 나서였다.
병사들이 수군대고 있었다.
"군사 대열의 허리를 끊고 지나가는 것은 요참과 같은 것이다."
"차라리 왕의 행렬이었다면 참겠다. 그런데 이게 뭔가. 한낱 술취한 계집
아닌가!"
이량도 그들의 불평을 들었다. 역시 수행하는 부관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대들의 불평은 무엇 때문인가."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부끄럽다니?"
"장군께선 보잘것 없는 한낱 술취한 계집한테도 말에서 내려 인사를
드려야 합니까."
"무엇이라고? 그녀가 누구이길래?"
"조왕의 누이이옵니다. 어가를 타고 들놀이 나갔다가 술에 취해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왕의 누이라 하나 어가를 타는 일도 벌을
받아 마땅할 터인데 장군과 같은 분을 말에서 내려 예를 올리게 하니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으음......그랬었나!"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슬슬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부관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지금은 천하가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설쳐 대는 시기입니다. 본래 누가
잘나고 못나고도 없습니다. 오로지 뜻을 세우고 그 능력을 다하면 누구든지
왕이 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런데 장군께선 무엇입니까. 장군께서 세운
왕의 누이한테까지 절을 해야 옳습니까. 저희들은 그런 장군님을 존경할 수
없기로 불평들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대의 생각도 옳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나."
"우선 저 계집을 뒤쫓아가 죽이게 해 주십시오."
"왕의 누이를!"
"장군께선 황제 폐하의 조서를 품에 지니고 계시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이었다. 진나라의 귀족으로 성장해 온 이량의 심성으로는 실상
반란군들의 짓거리들이 처음부터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누구나 왕이 되는 반도들의 지리멸멸을 보고는 싹수가 노랗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진나라가 쉽사리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역시 이 틈에 조나라를 배반하고 진으로 다시 달려가는 것이 옳을
듯했다.
"좋다! 가서 베어라!"
이량은 한길 가운데서 조왕의 누이를 벤 후 여세를 몰아 군대를 동원해
한단으로 단걸음에 달려가서 조왕 무신과 소소를 살해했다.
조나라로선 청천하늘로부터 벼락맞은 꼴이었다.
"이량이 배신했습니다. 일단 위난을 피하십시오."
장이와 진여에게 황급히 알려 주는 빈객이 있어 둘은 한단에서 재빨리
도망쳤다. 또다시 나그네 신세가 되었다.
신도(信都)로 쫓겨온 둘은 의논했다.
"서러워할 건 없네. 처음부터 우린 빈손이 아니던가."
"그건 그렇더라도 우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가."
"조나라를 버리고선 우리가 설 땅은 없네. 조나라의 인심을 얻기 위해선
전날 조나라 왕의 후손을 찾아 왕을 세우면 어떤가."
"옳은 판단일세. 이량의 반란은 조왕이 되려는 게 아니라 진나라에
귀순하기 위해서였거든."
"거록성(鉅鹿城: 河北省)을 본거지로 해서 재기를 노려 보세."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 조헐(趙歇)이라는 왕손을 찾아 조왕으로 옹립하자
조나라 인심은 다시 장이와 진여 쪽으로 몰려들었다.
장이는 조왕을 모시고 거록성의 남쪽 극원(棘原)에 주둔하고 진여는
상산의 수만 병력을 거두어 거록성의 북쪽을 지켰다.
그 동안 이량은 진여를 공격해 왔으나 진여에게 간단하게 패퇴해
장한(章한)군에게 도망가 그에 귀속되었다.
진의 왕리(王離) 장군이 장이를 포위하고 있었다. 장한이 길 양쪽으로
제방을 쌓아 물길을 터서 왕리에게 배로 군량미를 보내고 있었다.
왕리군은 군량이 풍부해진 반면 장이는 포위된 가운데서 군량미가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응급조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응급조처라 해
보았자 진여로부터 진군을 쳐서 포위를 헤치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장이는 진여에게 사람을 보내어 대병력으로 진군의 뒤를 치라고
권하였다. 그렇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진여는 이쪽의 위급함도 아랑곳없이
꿈쩍도 않고 있었다.
장이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진여에게 장염(張염)과 진택(陳澤)을
시켜 책망하는 편지를 보내었다.
- 당초에 나는 공과 문경지교를 맺은 사이요. 지금 나는 왕과 더불어
사지에 빠져 아침에 죽을지 저녁에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있소. 그런
사정임을 진작 알리어 우리를 구원해 달라 하였거늘 그대는 수만의 군사를
끼고 앉아 이쪽의 위기를 모른 척하고만 있으니 이 어찌된 일이오.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자던 의리는 어떻게 되었으며 우리가 믿던 우정은 어찌
되었소. 함께 죽자던 한 가닥 의리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 즉시 진군의
옆구리를 때려 주오. 그렇게라도 해 준다면 우리는 열에 한둘은 간신히
살아남을 수가 있겠소.
진여는 사자로 온 사람에게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이쪽은 이쪽대로의 판단이 있는 법이오. 나로선 진격해 보았자 조나라를
구원하기는커녕 군사 모두를 잃기만 할 뿐이오. 내가 장공과 조왕을 위해
출전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의리를 저버리고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란
말이오. 도무지 승산이 없기 때문이오. 이는 마치 굶주린 범에게 고기를
던져 주는 격이나 같소. 차라리 나라도 살아남아 장공과 조왕을 위해
나중에 복수라도 하는 게 옳지 않겠소."
진여의 설명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장암은 진여에게 간했다.
"어차피 승산없는 싸움이라면 뒷날을 생각하는 일도 무의미합니다.
차라리 함께 죽음으로써 신의를 세움이 옳을 듯합니다."
"장공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내가 지금 죽을 수밖에."
진여는 우선 오천의 병사로 진군을 건드려 보았다. 그러나 접전하자마자
진여군은 몰살하고 말았다.
그런 위기에서 천하의 사정은 멋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연.제.초가
조나라의 위급한 사정을 듣고 모두 달려왔다. 장오도 북쪽대 땅의 군사를
거두어 와서 진군과 대치하였다.
조나라가 구조된 결정적인 사정은 초나라 항우의 군대로 인해서였다.
항우는 하수를 건너 장한군을 때려부쉈다. 왕리를 사로잡았으며, 장한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거록성은 무사히 보존될 수가 있었다.
장이는 진여를 만나자마자 화부터 내었다.
"의리없는 놈!"
"무슨 소리냐. 승산은 없었지만 자네와의 의리 때문에 오천의 군사를
풀어 죽기살기로 싸웠다. 그 대가는 몰살이다."
"누가 그 따위 네 거짓말을 믿겠는가. 내가 보낸 사자 장암과 진탁은
어디 있나."
"오천 병사와 함께 죽었다."
"네가 죽였지!"
"내 말을 전연 믿지 않는군. 진실로 섭섭하다. 내가 장군 자리에만
연연해서 거짓을 참말처럼 말하는 줄 아는가. 옛다 가져가거라!"
진여도 화가 났는지 장군의 인수를 끌러서 장이에게 던져 주었다.
그렇게 되자 장이도 당황했다.
"무어 그토록 화낼 건 또 뭐야. 이쪽에선 당연히 따져 물을 일이 아닌가.
인수까지 풀 건 없어."
"일 없네. 난 할 말도 없고, 신의를 지켰다는 사실을 이렇게밖엔 증명할
길이 없겠지......"
진여가 측간으로 간 사이에 장이의 빈객이 재빨리 속삭였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하늘의
앙화가 대신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서 그 장군의 인수를 받으십시오."
장이는 빈객의 설득이 옳다고 판단했다. 기어코 장군의 인수와 군대를
접수시켰다.
진여는 휘하의 심복 군사 수백 명과 함께 하수의 물가로 떠나 낚시와
사냥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 일로 진여와 장이 사이에는 틈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주 원수 사이가
된 것이다.
조왕 헐은 다시 신도에 있게 되었다.
장이는 항우를 따라 함곡관 안으로 들어갔다.
항우는 제후들을 왕에 봉하고 있었다. 항우는 장이의 현명함을 들어 잘
알고 있었고 또한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나라를 둘로 나누어
장이를 상산왕으로 세우고 신도를 다스리게 하는 한편 신도의 명칭을
양국(襄國)으로 바꾸었다.
즈음에 진여의 빈객 중에서도 항우에게 진여를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장군, 진여와 장이는 한몸과 같은 사람입니다. 두 사람 모두가 조나라에
공을 세웠습니다."
"두 사람의 신의와 현명함은 잘 알고 있소. 그렇지만 진여는 함곡관으로
들어가자고 했을 때 따르지 않았소. 그런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소?"
"남피(南皮: 河北省)에 있습니다."
"그의 현명함은 인정하나 장이와 공은 같을 수가 없소. 때마침 남피
부근에 있다 하니 조왕 헐을 대 땅의 왕으로 옮기는 대신 그쪽의 세 개
현을 맡기겠소."
전날 장군의 인수 건으로 하여 진여는 여전히 장이에 대하여 감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 불만은 항우에 대해서도 터뜨려졌다.
"공은 같은데 장이는 왕이고 나는 후라? 어디 두고 보자. 상사(賞賜)가
공평치 못한 항우도 용서할 수가 없다!"
때마침 제나라의 전영(田榮)이 초나라에 반기를 들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진여는 하열(夏說)이라는 빈객을 보내어 설득하기로 했다.
"항우가 비록 천하를 주도하는 사람이나 공평하지 못한 결점이 있습니다.
일테면 지금의 수하 장군들에게는 모두 좋은 땅에다 왕으로 봉하여 주고
전날 고생하던 왕들은 척박한 땅으로 보내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대
땅으로 쫓아보낸 조왕입니다. 차제에 왕께서 항우에 대항하실 작정이라면
진여에게 군사를 빌려 주어 제나라를 보호하는 엄폐물이 되게 하십시오."
"조나라에 제나라의 심복을 심는다?"
"나쁠 게 무어 있습니까. 왕께서 초에 반기를 드시겠다면 말입니다."
"좋소. 그렇게 하십시다. 그래, 진여는 먼저 어디를 치겠다고 합디다."
"항우의 세력군이면 모두가 초나라입니다."
"알만 하오. 군사를 데려가시오."
그렇게 되어서 진여는 제나라의 군사를 얻었다.
진여가 자신의 군사와 합해 제일 먼저 친 곳은 상산왕은 장이의
조나라였다.
"뭐라고? 진여가 나를 치겠다고? 이것은 반역이지만 어쩔 수가 없지."
무방비 상태의 장이는 할 수 없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또다시 뜨네기 신세가 되었구나!"
장이가 도망치면서 한탄하자 천문가(天文家)인 감공(甘公)이 물었다.
"왕께서는 항차 어떻게 하시렵니까."
"글쎄, 바로 그 점이 어렵구나. 유방은 예부터 나와 친분이 있으나
유약하고 항우는 강한 데다 나를 세워 왕으로 하였지만 믿을 수가 없다.
그렇건만 의리로 치자면 초의 항우한테로 가는 게 옳지 않겠느냐."
감공은 머뭇거리는 장이를 살피며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전날 유방이 함곡관으로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다섯 개의 별이
동정(東井)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동정이 천문으로 봐서 어디에
해당하는가."
"진(秦)에 해당합니다."
"그건 무슨 뜻인가."
"진에 먼저 들어온 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초는 지금 강하다."
"나중에는 한(漢)에 먹힙니다."
"좋다. 유방에게로 간다."
감공의 진언에 따라 장이는 한나라로 향했다.
즈음에 유방도 삼진(三秦: 項羽가 關中을 三分했음을 말함)을 평정하고
나서 폐구(폐丘: 陝西省)에 진치고 있는 장한의 군대를 공격할 참이었다.
그 때 장이가 유방을 알현해 왔으므로 유방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전날
진나라가 대량을 멸망시킬 때 외황의 수령으로 있던 장이한테 백수건달인
유방이 식객으로 오랜 신세를 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진여는 장이를 패배시킨 뒤 조나라 땅을 모조리 거두어들여 대
땅의 조왕에게 주었다.
이를 감사히 생각한 조왕은 진여를 대왕(代王)으로 삼을 작정이었으나
진여는 극구 사양했다. 진여의 생각은 다른 데에 있었다. 약하고 작은
조나라만 바라보고 있을 게 아니라 천하 형세를 살펴 좀더 큰 뜻을 세울
작정으로 있었다.
대신 진여는 하열로 하여금 상국의 지위에 있게 하여 대 땅을 지키도록
하고 조왕을 지도하는 정도로써 만족하였다.
즈음에 유방이 초나라를 함께 치자는 조건으로 조나라에 사신을 보내
왔다.
진여가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물론 함께 초를 치겠다. 조건은 단 한 가지. 장이의 목을 가져 오라!"
사자가 가서 유방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진여의 장이에 대한 원한이 깊구나. 그렇지만 장이를 죽일 수야 없지."
그 대신 유방은 장이를 꼭 닮은 사람을 찾아 목베어 진여에게 갖다
주었다. 그제서야 진여는 유방의 제의에 응했다.
그러나 유방의 군대가 팽성(彭城: 江蘇省) 서쪽에서 패하고 장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진여는 곧 한나라를 배반해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한나라의 한신(韓信) 장군이 이미 위나라를 평정하고 장이와 함께
조나라를 쳤다.
이 싸움에서 이긴 장이는 지수(지水)의 물가에서 마침내 진여를
붙잡았다.
"그대는 나를 여러 번 죽이려 했지만 나는 단 한 번 그대를 죽인다."
장이는 진여를 참한 뒤 조왕 헐을 추격해 양국 땅에서 잡아 죽였다.
유방은 옛 은혜를 못 잊어 장이를 조왕으로 봉했으나 이태 후 장이는
병으로 죽었다. 그에게 경왕(景王)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아들
장오(張敖)에게 뒤를 이어 조왕이 되게 했다.
또한 유방은 딸[魯元公主]을 장오한테 시집 보냈다.
다시 이태 후 유방이 팽성에서 돌아와 조나라를 지나갔다.
그 때 조왕은 아침저녁으로 옷을 걷어부치며 팔뚝걸이까지 끼우고
앞드림을 걸어 몸을 낮추어 손수 식사를 올리는 등 사위로서의 예를
최대한으로 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방은 두 다리를 상 위로 내뻗는
오만불손한 태도로 사위를 꾸짖고 모욕을 주었다.
조나라의 재상 관고(貫高) 조오(趙午) 등은 육순의 나이였다. 이들은
선왕 장이의 빈객들이었으며 평소에 기개가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유방의 태도를 보고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도 너무 한다! 아무리 사위라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이 아닌가.
신하들 앞에서 그런 모욕을 주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왕께서도 너무 비굴하시지. 대접할 신하들이 수두룩한데 아무리
장인이라지만 저토록 저자세일 건 무어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우리의 왕을 위하여 저 오만방자한 유방을
죽이자!"
"그렇게 하자!"
그렇게 되어 신하들이 몰려가 조왕께 아뢰었다.
"지금은 대저 천하의 호걸들이 저마다의 능력을 가지고 천자가 되겠다며
봉기하는 때입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무엇이 부족하여 저토록 불손한
한왕을 그토록 공손하게 섬기는 것입니까. 분하고 원통해서 신들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왕을 대신하여 유방을 죽이겠으니 굽어 살피소서!"
대신들의 말을 들은 조왕은 대경실색했다. 곧장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보이면서 소리쳤다.
"공들은 무슨 그런 그릇된 말씀을 하시오! 선왕(張耳)께서 나라를
잃으셨을 적에 한왕의 힘을 입어 비로소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소이다. 나
또한 사위로서 장인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이어늘 너무 고깝게 생각지를
마시오. 그러하니 원컨대 공들께서는 다시는 이와 같은 말을 입 밖에 내지
마시오. 오늘 일은 전연 없었던 사건으로 덮어 두겠소."
어전을 물러나온 대신들은 따로 모여 의논했다.
"우리가 아뢴 게 잘못이오. 덕이 있는 우리 왕께서 남의 은덕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점도 우리의 과실이오."
"그러나 우리의 임금이 모욕당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 바도
의(義)인 것이오."
"맞소. 우리의 왕을 모욕하는 자를 죽이는 것은 우리 왕의 덕을 더럽히는
일이 아니오!"
"결론은 하나요. 유방을 죽입시다. 일이 성공되면 그 공을 왕께 돌리고
실패하면 그 죄를 우리가 뒤집어쓰는 겁니다."
"당연한 일이오!"
이듬해 유방이 동원(東垣)땅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나라에 다시 들렀다.
그 때 대신들은 유방이 묵기로 된 박인(박人: 河北省) 숙소의 이중벽
속에 무사(武士)들을 숨겨 한왕 일행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유방은 가슴이 떨려 수행자들에게 막연히 물었다.
"여기가 어딘가?"
"박인이란 곳입니다."
"박인이라면 사람에게 핍박받는다[迫於人]는 뜻이 아닌가. 불길하다.
그냥 지나친다."
한왕 일행은 묵지 않고 떠나 버렸다. 재상 관고와 원수지간이 없으란
법은 없는 것이다. 이들의 음모를 알고 있던 한 자가 한왕에 고해 바쳤다.
곧 칼잡이들이 붙잡혔고 조왕과 관고 등도 체포되었다. 속절없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음모에 연루되었던 대신들이 앞을 다투어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했다.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던 관고만은 홀로 버틴 채 그들을
향하여 크게 꾸짖었다.
"대체 누가 이런 음모를 꾸몄는가. 우리들 자신이 아닌가. 왕께서는 아무
영문도 모르시고 체포되셨는데 우리가 모조리 죽어 버린다면 그 누가 왕의
무고함을 증명해 준단 말인가!"
관고는 죽지 않고 죄수 수송 수레에 갇혀 장오와 함께 장안으로
끌려갔다.
옥관의 문초는 지독했다. 곤장을 치고 쇠로 살을 찔러 대고 뼈를 부수고
거꾸로 매달고 물고문을 시키고...... 하여도 늙은 관고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희들끼리 한 짓입니다. 저의 왕께서는 정말로 모르시는 일입니다."
한왕의 부인[呂后]도 몇 번씩이나 조왕의 무고함을 남편에게 간했다.
"사위가 장인에게 반기를 들 까닭이 없습니다."
"모르는 소리 마오! 장오 저 자가 만일 천하를 쥐었다면 그대 딸 같은
여자 거들떠나 보겠소?"
유방은 결코 귀를 기울이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문초의 결과가 한결같다는 정위의 보고를 들은 유방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은이가 장사로군. 대답이 한결같다고? 누가 관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는가. 물론 사적인 일로 물어 보는 것이다."
그 때 중대부(中大夫) 설공(泄公)이 나서서 대답했다.
"관고는 신과 동향이어서 어려서부터 너무나 잘 아는 사이입니다. 그는
조나라를 몹시 사랑하며 의를 매우 중하게 여기는 인물입니다. 남에게
모욕당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신의를 무겁게 간직하는 자입니다."
"모를 일이다. 그대가 다시 가서 자세히 물어 보아라."
그래서 설공은 절(節: 君命을 받드는 표지)을 가지고 관고를 방문했다.
"설공인가?"
관고가 평소와 같이 반기자 설공도 관고의 고통을 위로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설공은 비로소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우정으로 묻겠네. 과연 조왕에게 그 날의 음모는 없었는가."
"다시 말하거니와 없었네. 사실 인간의 정으로 자기 부모처자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는 지금 삼족을 멸하는 선고를 받고 있는 몸이네.
아무리 왕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한들 육친과 바꿀 수야 있겠는가. 역모는
왕이 꾸몄고 나는 모르는 일이란 한마디면 나와 가족은 풀려나네. 그렇지만
어찌 진실을 거절할 것인가. 일은 우리끼리 꾸몄고 왕께선 도무지 모르시는
일이네."
그리하여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조왕으로서는 역모를 알턱이 없던
배경 따위를 샅샅이 들려 주었다.
설공은 궁중으로 들어가 한왕에게 일의 자초지종을 상세히 보고하였다.
"기특하다. 관고는 정작 사람됨이 신의를 무겁게 지키는 훌륭한
인물이로구나. 그를 풀어 주어라."
설공이 더욱 기뻐서 관고에게로 달려갔다.
"자네는 용서받았네!"
"용서는 무엇 때문인가. 내가 바라는 건 조왕의 무혐의일세."
"조왕은 벌써 석방되셨네."
"확실히. 그것은 그대의 소행이 훌륭하여 그대와 그대의 왕이 풀린
것일세."
"이내 몸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을 정도로 매를 맞으면서도 살아 있은
이유를 아는가."
"그대 왕의 무혐의를 증명하려는 일념에서였겠지."
"그랬었네. 이제 내 책임은 끝났네."
"무슨 뜻인가."
"죽어도 한이 없네. 신하로서 시해자(弑害者)의 오명을 남겼으니 임금을
섬기는 면목도 없어졌네. 한왕이 나를 죽이지 않더라도 살아 있는 내
마음은 부끄러운 법일세."
그런 후 관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그로 인해 관고의 명성은
천하에 떨쳐갔다.
장오가 석방되어 나온 뒤 그는 노원 공주의 배우자라는 이유로
선평후(宣平侯)에 봉해졌다. 그리고 고조는 차꼬를 차고 노비처럼 조왕
장오를 따라 함곡관으로 들어왔던 여러 빈객들을 매우 훌륭하다 여겨
제후의 재상이나 군수 등에 앉혔다.
효혜제(孝惠帝)와 고후(高后: 呂后).효문제(孝文帝).효경제(孝景帝)
시대가 되면서 조왕의 빈객들 자손들은 모두 2천 석의 녹봉을 받았다.
장오는 그 후 6년에 죽었다.
그의 아들 장언(張偃)이 노원왕(魯元王)이 되었다. 언의 외할머니가
여후였으므로 언이 노의 원왕이 될 수 있었다.
원왕은 허약하고 형제가 적었기 때문에 장오의 첩들에게서 얻은 두
아들을 후로 봉했는데, 낙창후(樂唱侯) 장수(張壽)와 신도후(信都侯)
장치(張侈)가 곧 그들이다.
여후가 죽은 후 여씨 일족이 무도하였기 때문에 대신들에 의해 일족들이
대부분 피살되고 낙창후와 신도후도 폐위되었다.
효문제가 즉위하자 다시 노의 원왕 언을 남궁후(南宮侯)에 봉하여 장씨의
뒤를 잇게 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장이와 진여는 현자(賢者)로 세상에 전해졌으며 그의 빈객들과
종들까지도 천하 준걸들이 아닌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대신이나 재상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이 없다.
그런데 장이와 진여는 당초 빈천한 시절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신의를
지켰으나 나라를 움켜쥐고 권력을 다투게 되자 마침내 서로를 멸망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째서 전날에는 서로 사모하고 신뢰함에 있어 그 성의를 다지다가
나중에는 서로 배반하는 부조리에 빠졌을까. 결국은 형세에 따라 변하고
이익만을 추구했던 관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비록 그 명예가 높고 빈객들 역시 많았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걸어간
길은 아마도 오(吳)나라의 태백(太伯)이나 연릉(延陵)의 계자(季子)가
걸어간 겸양의 정신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