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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양지인
    참고 자료 2013. 4. 10. 12:25

    송양지인

    [ 宋襄之仁 ]
    요약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또는 불필요한 인정이나 동정을 베풀다가 오히려 심한 타격을 받는 것을 비유하는 말.

    宋 : 송나라 송
    襄 : 도울 양
    之 : 갈 지
    仁 : 어질 인

    송(宋)나라의 양공(襄公)은 초(楚)나라와 싸울 때 먼저 강 저쪽에 진을 치고 있었고, 초나라 군사는 이를 공격하고자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이때 장군 공자목이(公子目夷)가 송양공에게 이르기를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을 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고 권하였다. 그러나 송양공은 "그건 정정당당한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참다운 패자가 될 수 있지 않은가" 하면서 듣지 않았다.

    강을 건너온 초나라 군사가 진용을 가다듬고 있을 때, 또다시 "적이 미처 진용을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지리멸렬(支離滅裂)시킬 수 있습니다" 하고 건의하였으나, 송양공은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 하며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송나라는 크게 패하게 되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를 비웃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고 하였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참조항목
    고사성어
    역참조항목
    십팔사략, 양공, 미생지신
    출처 : 두산백과두산백과



    송양지인

    [ 宋襄之仁 ]

    한자 뜻과 음

    : 송나라 송, : 도울 양, : 의 지, : 어질 인

    풀이

    송나라 양공의 인정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동정 또는 배려를 말한다.

    유래

    춘추 시대 송(宋)나라의 임금 환공(桓公)이 중한 병이 들어서 드러눕자, 자연히 후계 문제가 대두되지 않을 수 없었다. 환공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이인 목이(目夷)는 측실에서 났고, 작은아들 자보(玆父)는 정실 출생이어서 당연히 후계의 자격이 있었다. 두 형제는 비록 신분 차이가 있을망정 우애가 깊었다.

    “나라가 잘 되려면 군주가 어질고 유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형님이 아버님의 후사를 잇는 것이 타당합니다.”

    자보는 이렇게 말하며 보위를 양보할 뜻을 비쳤다. 그러나 그 말을 전해 들은 목이는 손사래를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우야말로 나보다 훨씬 똑똑할 뿐 아니라 어디까지나 적자(適者)가 아닌가. 예와 법에 어긋난 짓을 할 수야 없지.”

    이윽고 환공이 죽자, 조정 논의의 결과에 따라 자보가 후계를 이어 양공(襄公)이라 했는데, 그는 이복형 목이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리하여 두 형제는 오손도손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갔다. 그로부터 7년 후인 기원전 643년, 춘추 시대의 첫 패자인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죽었다. 그 바람에 천하의 제후들은 가슴 속에 감추고 있던 야망의 꿈틀거림으로 슬금슬금 옆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당사자인 제나라 국내 사정은 치열한 후계 다툼으로 뒤숭숭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면 난들 패자가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생각한 양공은 형에게 자기 심중을 털어놓고 의견을 구했다. 재상 목이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나라로서 맹주를 꿈꾸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 송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잘못되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릅니다. 재고하십시오.”

    그러나 한번 야망이 불붙기 시작한 양공은 형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그는 후계자 문제로 시끄러운 제나라에 쳐들어가 공자 소(昭)를 지원해 그를 임금에 앉혔고, 그 영향력을 십분 이용한 덕분에 얼마 후에는 송나라, 제나라, 초(楚)나라 삼국의 맹주가 되었다. 그렇지만 맹주라고 해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힘없는 주(周)나라가 ‘천자의 나라’ 행세를 하듯이 그것은 다만 형식상의 관계일 뿐이었고, 실제는 ‘힘’이 모든 것을 좌우했다. 이듬해 양공은 정(鄭)나라가 초나라와 맹약을 맺자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삼국의 엄연한 맹주인 나를 무시하고 초나라와 화친하겠다고? 이건 그냥 둘 수 없다.”

    양공은 이렇게 외치고 정나라를 치기 위한 군대를 일으켰다. 그렇게 되자 초나라는 맹약의 조건이라든지 의리상 정나라를 돕지 않을 수 없어 구원군을 파견했고, 따라서 송나라군과 초나라군은 홍수(泓水) 강가에서 일대 격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돌입했다. 그곳에 먼저 가서 포진한 것은 정나라군이었는데, 뒤미처 초나라군이 도착하여 어수선한 가운데 진지 구축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양공은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타깝다 못한 목이가 양공에게 촉구했다.

    “적의 병력은 우리보다 월등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공격해야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공은 고개를 저었다.

    “형님은 무슨 말씀을 그리 하오. 옛말에 ‘군자는 이미 상처 입은 자를 다시 다치게 하지 않으며, 머리가 반백인 자를 사로잡지 않는다’고 했소. 옛날 싸움의 양상을 보더라도 험한 지세를 이용해서 이기려는 약은 짓은 다들 하지 않았소이다. 과인이 비록 망한 나라의 후손이지만, 아직 정렬하지도 않은 적을 치려고 어찌 북을 울릴 수 있겠소?”

    이렇게 터무니없는 여유를 부린 결과 정작 양쪽 군대가 치열한 전투에 돌입했을 때는 모든 조건이 양호한 초나라군에게 승리가 돌아갔고, 송나라군은 재기불능의 참패를 맛보았다. 양공 자신도 그 싸움에서 다리에 큰 상처를 입어, 그것이 낫지 않고 크게 도지는 바람에 이듬해 죽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기보다 ‘쓸데없는 인정’으로 여유를 부리다 패한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동의어
    미생지신
    출처 : 고사성어 따라잡기, 구인환, 2002.5.15, 신원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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