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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초(楚)나라의 명재상 - 손숙오
초장왕이 수레의 크기를 늘리려하자 먼저 문턱을 높히게 함省躬譏誡하고 寵增抗極하라.(성궁기계하고 총증항극하라.)
자신의 몸을 살피고 경계하며, 임금의 총애가 더할수록 그 마지막을 걱정하라.
춘추시대의 패자(覇者 : 제후들의 우두머리) 중 뛰어난 인물 다섯 명을 일컬어 '오패(五覇)'라고 한다는 사실은 이미 말씀드렸지요? 이 오패(五覇) 중 세 번째로 꼽는 인물이 춘추전국시대 당시 중국 대륙 남쪽의 강대국이었던 초(楚)나라의 장왕(莊王)입니다. 그러나 장왕(莊王)은 즉위 초 수렵(狩獵)과 무용(武勇)을 너무 좋아해 통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손숙오(孫叔敖)라는 현자(賢者)를 재상으로 등용한 이후에는, 나라 안팎의 정치에 힘써 불과 3년 만에 중국 대륙을 호령하는 패자(覇者)가 될 수 있었습니다.
후대의 중국학자나 사상가들은 손숙오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노력한 덕택에 장왕(莊王)은 비로소 패자(覇者)가 될 수 있었다면서, 초(楚)나라가 손숙오를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했습니다.
손숙오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초(楚)나라의 정사를 담당하는 최고 벼슬인 영윤(令尹)의 자리에 세 번이나 올라서도 기뻐하지 않았고 또 세 번이나 영윤(令尹)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도 언짢아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할 일에 전념했을 뿐 부귀영화나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죽음 직전까지 자신이 가진 부귀영화나 권력을 경계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그를 더욱 현명한 사람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입니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 그가 아들에게 남긴 유언과 관련한 이야기는 고대 중국의 선비들이 오래도록 기억한 듯합니다.
손숙오는 임종이 가까워지자 자신의 아들을 불러 부귀영화와 권력을 경계하라면서, "혹시 왕이 너에게 봉지를 주려고 하면, 절대로 기름진 땅을 받지 마라. 다만 초(楚)나라와 월(越)나라 중간에 침(寢)이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지(山地)가 있는데, 그 땅은 기름지지도 않고 그다지 좋지도 않다. 그래서 누구도 그 땅을 바라지 않는다. 오래도록 지닐 수 있는 땅은 그 곳 이외에는 없으니, 그 땅을 봉지로 받아라"고 유언했습니다.
손숙오가 죽자, 그의 유언대로 왕은 손숙오의 아들에게 좋은 땅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손숙오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좋은 땅을 사양하고 침(寢) 지역의 구릉(丘陵) 지대를 봉지(封地)로 받았습니다. 그후 숱한 왕권의 교체와 권력 투쟁 속에서 좋은 땅을 차지한 귀족과 신하들은, 그 땅 때문에 목숨을 잃고 멸문의 재앙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손숙오의 후손들만은 오래도록 그 땅을 유지한 채 가문의 맥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손숙오야말로 '省躬譏誡(성궁기계)하고 寵增抗極(총증항극)하라(자신의 몸을 살피고 경계하며, 임금의 총애가 더할수록 그 마지막을 걱정하라)'는 말을 몸소 실천한 현인(賢人)이었던 셈입니다.한자익히기
省(살필 성) 躬(몸 궁) 譏(나무랄 기) 誡(경계할 계)
寵(고일 총) 增(더할 증) 抗(겨룰 항) 極(다할 극)- 출처 :천자문뎐, 한정주, 2009.12.1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