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의『사기』경영학참고 자료 2013. 3. 6. 11:49
2010/03/18 17:26
http://blog.naver.com/wisdomhouse7/102177971
출처:김영수의『사기』경영학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 범려
(범려 사진)
위나라에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했다. 군신들 가운데 절반은 그 사람이 유죄라고 판정했고, 나머지 절반은 무죄라고 판정했다. 위왕魏王도 결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이에 위왕은 “평민의 신분으로 거부가 된 도주공에게는 틀림없이 기막힌 지혜가 있을 것이다”라며 범려를 불러 자문을 구했다.
“저는 일개 백성에 지나지 않아 이런 형사사건을 판결할 줄 모릅니다만, 제 집에 백옥이 두 개 있사온데 색도, 크기도, 광택도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1000금이고, 하나는 500금입니다.”
“색도, 크기도, 광택도 같은데 어째서 값이 다르오?”
“그것들을 옆에서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가 좀더 두껍습니다. 그래서 값이 배나 더 나가지요.”
“옳거니! 죄를 판정하기 어려우면 사면하고, 상을 줄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우면 그냥 상을 주면 되지!”
위나라 백성은 왕의 조치에 크게 만족했다. 위왕은 결단을 내리기 힘든 문제에 직면해 범려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범려는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직접 말하지 않고, 자신이 사업에서 흔히 부딪히는 백옥의 값을 예로 들어 풀기 어려운 문제를 풀 때 지켜야 할 두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나는 옆에서 살펴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꺼운 것이 귀하다는 것이다. 위왕은 이 말을 알아듣고 바로 판정을 내렸다.
결정하기 어려운 일에 직면하거나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이익과 손해, 우세와 열세를 놓고 분석을 하지 못한다. 범려가 옆에서 살피라고 한 것은 늘 관찰하던 방식, 즉 종전의 시각을 버리고 새로운 각도에서 사안을 다시 보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결단을 내릴 때 우리는 늘 자신의 이익이나 도덕적·가치 표준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옆에서 사안을 관찰하면 새롭게 참고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좌표와 정보를 통해 사안을 다시 관찰하면 자연스럽게 이전과 다른 인식이 도출된다.
하지만 사물을 어느 쪽에서 보든 가치 지향의 문제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바꿔 말해 사안의 우열에 대한 판단은 늘 일정한 기준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범려는 위왕의 가치 판단을 돕기 위해 ‘두꺼운 것이 귀하다’는 비유를 은근히 끼워두었다.
우리는 여기서 범려가 말한 ‘두꺼운 것이 비싸다’ 혹은 ‘두꺼운 것이 귀하다’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두껍다’는 뜻의 ‘후厚’에 암시가 내포되었기 때문이다. 『주역周易』의 ‘곤坤’괘에 보면 “군자는 후덕厚德으로 재물을 얻는다”고 했고, 『국어國語』에서는 “후덕한 자만이 복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이는 너그럽고 후한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이다.징후를 살펴 예방하는 명의 편작
(편작 사진)
위나라 군주가 편작에게 “당신 삼형제는 모두 의술에 정통하다던데, 누가 의술이 가장 뛰어나오?”라고 물었다. 편작은 뜻밖에도 “큰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이 그다음이며, 제가 가장 떨어집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위왕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런데 어째서 당신의 명성이 자자하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큰형님의 의술은 병의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치료하는 것입니다. 형님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이에 병의 원인을 제거합니다. 그러다 보니 형님의 명성이 외부로 전해질 수 없지요. 둘째 형님의 의술은 병의 초기 증세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가볍게 치료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명성이 마을에 퍼질 정도지요. 저는 주로 중병을 치료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맥에 침을 꽂고 피를 뽑고 피부에 약을 붙이고 수술하는 등 법석을 떨기 때문에 제 의술이 뛰어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명성이 전국에 알려질 수밖에 없지요.”
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부분 병이 난 다음 허둥지둥한다.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마천은 명의 편작의 일화를 통해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예방할 능력이 있는 의사가 명의라는 점을 인상적으로 전한다.자신의 인생을 차분하게 성찰한 공자
(공자와 공자천하주유상 사진)
70대 노인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10대부터 10년 단위로 짧게 정리하라고 했을 때,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요령 있게 자신의 인생을 전달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역사상 이 방면에서 가장 뛰어난 모범 답안을 제시한 어른을 들라면 아무래도 공자가 아닌가 싶다. 그는 자신의 70평생을 38자로 개괄했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짧은 자서전 내지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공자의 회고록 『논어』 「위정爲政」을 보자.나는 열다섯 무렵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무렵에 내 뜻을 세웠고, 마흔 무렵에는 흔들리지 않았고, 쉰 무렵에는 천명을 알았다. 예순 무렵에는 남의 말이 순수하게 들렸고, 일흔이 넘자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았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평생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시대는 그의 이상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정치적 생애를 두고 실패라고들 한다. 38자로 된 회고록은 공자가 일흔이 넘자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제자들에게 구술한 것으로 추측된다. 어쩌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삶을 정리하면서 감개무량한 심경을 고백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영수의『사기』경영학
『성찰』(김영수의『사기』경영학)은 사마천司馬遷이 남긴 위대한 역사서이자 영원한 고전『사기』를 20년간 연구하고 완역작업에 정진하고 있는 역사학자 김영수의 신간이다. 국내 최고의 ‘『사기』연구자’로『사기』관련 저서를 가장 많이 펴낸 저자는 이 책에서『사기』를 관통하는 리더들의 제1원칙을 ‘성찰’로 꼽고, 리더, 말, 인간과 사물, 소통, 실패, 가치, 관계 등 7개의 관점에서 다룬 32꼭지의 글을 통해 진정한 성찰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사기』를 중심으로 하되 기타 중국 고전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느낀 바와 우화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변주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은 동양 고전 속의 우화를 오늘의 관점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폭넓은 사유를 통해 쉽게 설명하고 있어 개인이 어떻게 성찰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또한 고전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힘과 함께 최근 화두처럼 떠오르는 인문경영의 핵심이 무엇인지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성찰의 힘을 스스로 키울 수 있는 32가지 지혜를 만나보자.--------------------------------------------------------------------------------------
이하 책 요약 출처 : http://www.1pagebook.org/detail.php?number=648&thread=12r01r02#favorite
1. 전략 없는 전쟁은 필패다
[소진과 장의가 주도한 천하 판도]춘추 적군 시대는 중국 역사상 최대의 혼란기인 동시에 최고의 황금기이다. 약 반천년에 걸친 이 시대는 유례가 없는 인재 유동의 시대이다 기회의 시대였다. 수백개에 이르는 나라들이 생존경쟁 중에 멸망했다. 이 과정에서 국적과 종족을 초월해 누구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면 등용될 수 있었고, 그 중 큰 성취를 이뤄낸 사람은 국제적 명성과 부귀영화를 누렸다.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로 접어들면서 전국은 1강 6약의 국제정세로 개편되었고, 1강인 진나라의 통일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소진은 이런 시대적 배경을 안고 외교무대에 등장하였다. 공부를 마친 소진은 관직에 오르기 위해 진나라로 가서 그 뜻을 펼치고자 한다. 하지만 소진은 가족의 반대와 진나라의 등용 거부로 연나라로 가서 자신의 뜻을 펼친다. 그는 6약인 연, 한, 위, 제, 초, 조나라의 6약국의 동맹으로 진나라에 대항하고자, 6국을 돌며 자신의 합종 전략을 내세운다. 소진의 합종 전략은 ‘1강 6약이란 천하 정세에 맞춰볼 때 6약이 1강 진나라에 맞서 독립성을 유지한 채 생존하려면 서로 연합하는 수밖에 없다’는 전략이다. 소진은 나라들을 상대로 유세를 펼칠 때 아주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 나라의 이익부터 시작해서, 각 나라의 적대관계를 전제로 한 이익 충돌을 과장하는 방법, 지리, 경제, 사회등 객관적 여건을 강조해 상대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 심리를 자극하는 격장술을 통하여서 유세를 하는 등의 멋진 기술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6약국의 이해관계가 변하고, 진나라의 이해관계가 조금만 변하는 변수가 있어도 합종 전략은 반드시 패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는 그의 친구인 장의를 고의로 모욕을 주어 진나라로 보내어 연횡(진나라의 동방에 있는 6국을 차례로 격파함으로 천하통일을 하는 방법)을 유세하게 하였다. 소진이 죽은뒤 장의는 진나라를 완벽한 연횡유세를 통하여 진나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장사꾼 여불위의 천하를 건 승부수]
장사꾼의 신분으로 천하경영을 꿈꾼 한 사내가 있었다. 장사꾼 여불위는 사업차 조나라 수도 한단을 찾았다가 진나라에서 인질로 잡혀온 자초를 발견했다. 자초는 진나라의 왕위계승자인 안국군 태자의 20여명의 이르는 아들중 한명으로 조나라와 진나라의 인질교환에 따라 조나라에 와있었다. 어머니는 안국군의 총애와는 거리가 먼 여자였고, 자초가 조나라에 인질로 와 있을때 진나라는 조나라를 여러번 침범하여 그때마다 자초가 죽을 뻔 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왕실의 핏줄이었지만 자기나라에서 조차 외면당한 자초를 여불위가 발견하고는 큰 사업을 구상한다. 여불위는 안국군, 즉 자초의 아버지가 가장 총애아는 화양 부인에게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불위는 자초에게 내가 당신을 크게 해주겠다고 말하고, 자초는 계획이 성공하면 진나라 땅을 함께 나누겠노라 약속한다. 여불위는 진나라의 수도로 들어와 화양부인에게 “미모로 남자를 섬기던 사람은 그 미모가 시들면 남자의 사랑도 시드는 법”이라고 설득하면서 안국군의 사랑이 건재한 지금 훗날을 위해 자초같은 양자를 들이기를 유세한다. 화양부인은 그리하여 자초를 양자로 들이게 된다. 여불위는 현재 황제인 소양왕에게도 자초의 존재를 알리고자 백방으로 애를 써 그 존재를 알리고, 여불위는 조나라의 장수를 돈으로 매수해 몰래 자초와 조나라를 빠져나온다. 그 때 여불위는 자신의 아이를 배고있던 여자인 조희를 자초에게 주었고, 자초는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착각한 채 진나라로 돌아간다. 소양왕이 세상을 떠나고 안국군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안국군이 소양왕의 상을 마치기도 전에 죽어 자초는 바로 장양왕으로 즉위한다. 여불위는 거지꼴로 헤매던 자초를 천하를 호령하는 진나라의 국왕으로 만든 사람이다.
[통치와 민심의 함수관계]
강태공 하면 흔히들 할 일 없어 한가하게 낚시나 하는 한량을 가리키는 말의 대명사처럼 사용한다. 하지만 실제 강태공은 주왕조라는 나라를 세우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지략가이자 정치가였다. 그가 제나라의 통치를 맡게 되었을 때에 “군신의 예의를 간소화 하고 그곳의 퐁속과 일처리 방식을 따라 일을 했다”라고 주공에게 보고하여 그는 아낌없는 칭찬을 받았다. “무릇 정치란 간소하고 쉽지 않으면 백성들이 가까이하지 않는다. 정치가 쉽고 친근하면 백성들이 절로 모여드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강태공은 백성들의 인심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이해득실이라는 물질적 기초를 제시하고 있다. 추상적인 인의도덕이 아닌 백성들의 물질적 생활이 얼마나 넉넉한가를 거론한 것이다.
안영은 제나라의 3대국군을 섬기며 나라를 발전으로 이끌었던 주요인물이다. 안영은 근검절약과 청렴결백으로 대변되는 철저한 자기수양과 원칙과 지혜, 그리고 균형잡힌 정치적 감각으로 큰 혼란에 빠지기 쉬운 제나라 조정을 반 세기 가까이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안영은 제나라의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 경공에게 여러 가지 충고를 아낌없이 해주었고, 백성을 아끼는 덕보다 더큰 덕은 없고, 백성을 즐겁게하는 행동보다 좋은 행동은 없다고 말해준다.
2. 사람이 모든 것이다
[인재를 잘 구별하고 등용하라(사마천, 백락, 유방, 항우)]인재가 조직은 물론 나라의 성공과 실패 흥성과 멸망을 좌우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치 않는 원칙이자 진리에 가까운 명제다. 사기 130권을 남긴 사마천은 전체의 86%에 해당하는 112편을 사람에 대한 기록에 안배할 정도로 인간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과 고뇌를 보여준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가 흥하려면 반드시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난다. 군자는 기용되고 소인은 쫒겨난다. 반면에 나라가 망하려면 어진 사람은 숨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난신들이 귀하신 몸이 된다. 나라의 안위는 군주가 어떤 명령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고, 나라의 존망은 인재의 등용에 달려있다는 말이 이런뜻일게다.”
‘백락’은 좋은 말을 잘 알아보는 명마 식별 전문가의 대명사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좋은 말을 고르는 것과 인재를 식별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통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백락의 명마 식별론을 빌려 인재를 식별하고 기용하는 이치를 설명해왔다. “세상에는 백락이 있은 다음에라야 비로소 천리마가 나타날 수 있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아무리 귀하 천리마라도 그 말을 식별할 줄 아는 백락이 없으면 그 말도 소금이나 나르는 잡말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10명의 인재를 얻는 것보다 그 인재를 식별하고 기용할 줄 아는 사람 하나를 얻는 것이 낫다는 말은 백락과 천리마의 관계를 빌려 인재 문제를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요소이다.
거대한 제국 진나라가 쓰러지자, 전국 각지에서 군웅들이 일어나 패권을 다퉜는데 이 경쟁은 유방과 항우의 양자 대결로 압축되었고 결국은 전력상 절대 열세에 놓여 있었던 유방이 역전에 성공해 한나라를 건국한다. 이 두 영웅의 대결은 힘겨루기였지만, 그 내면은 그 휘하에 포진한 인재들의 대결로 압축된다. 유방이나 공신들은 초,한 전쟁의 승패 원인에 대해 나름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결같이 인재의 포용과 대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방이 다양한 인재를 기용하고 이들의 능력과 지혜를 잘 활용했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복수심이 성공을 부른다]
사마천은 불의와 악에 대한 정당한 복수를 인정한다. 복수에 대한 일념이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극복하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범저라는 인물은 복수심이라는 일념으로 성공에 도달한 유명한 인물 중 한명이다. 범저는 자신의 조국인 위나라로부터, 모함을 받아 버림을 받고, 자신을 모함하며 사지에 몰아 넣었던 수고와, 위제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고문중에 죽음을 가장하여 탈출을 시도했다. 그 후에 이름까지 바꾼 후에 진나라로 건너와 소왕의 신뢰를 얻어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남다른 식견과 언변으로 끝내는 진나라의 재상자리에 오른다. 범저는 결국 소왕의 신임과 자신의 위세를 빌려 원수인 수고와 위제에게 복수한다. 범저는 재상이 된 다음 지난 날 신세를 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보답했다고 한다. 그는 단 한 끼 식사에 대한 은혜에도 반드시 보답했고 누군가 한 번이라도 자신을 노려봤으면 보복한 인물이었다.
3. 리더십이 기업의 흥망을 결정한다
[성공한 개혁의 사례들(현상인정)]
사마천의 사기에는 대표적인 성공 개혁 사례들이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사마천이 개혁은 인류사를 진보시키는 원동력임을 확실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는 개혁의시대라 했다. 기원전 5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문후의 개혁은 말 그대로 전바위 개혁이었다. 문후는 먼저 경제분야의 개혁 전문가인 이괴를 재상으로 발탁했다. 그는 개혁의 시작을 알리는 조치로 귀족들에게 세습되던 각종 특권을 폐지할 것을 주장했고, 이괴는 토지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기초개혁을 시작으로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평적법을 마련해 백성들의 기초생활을 안정시켰다. 지방 행전 전문가로는 서문표를 발탁해 훌륭하게 다스렸고, 군사 전문가로 오기를 스카웃해 군대를 개혁했다. 문후는 이 밖에도 정치에 임좌, 군사에 악양, 교육에 자하등 수많은 인재를 각 분야별로 고루 발탁해 전면 개혁에 박차를 가했고, 전국시대의 최초의 강자로 떠오른다.
흔히들 현상을 진정하는 것과 현상에 집착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당사자는 더욱 그렇다. 현상을 인정하는 리더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파악하고 그 책임에 대해 자성하지만, 현상에 집착하는 리더는 문제점을 회피하거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한다. 초,한 전쟁때 항우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에서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내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님을 알게 하고 싶다”라며 책임을 애꿏은 하늘에 돌렸다. 위기가 되었든지 전성기가 되었든지 리더라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의 자기성찰은 곧 국력(자기성찰)]
전국시대의 제나라는 강국에 속했다. 하지만 위왕때 이르러 무사안일에 빠져 국력이 기울기 시작한다. 그러자 아첨꾼들이 저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위왕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 놓아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이에 재상으로 있던 추기는 위왕에게 단단히 충고하리라 마음을 먹고 위왕에게 아첨꾼들이 너무 많음을 충고한다. 추기의 충고에 위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동의를 표하며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조정 대신도 좋고 백성들도 좋다. 누가 되었건 과인의 면전에서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큰 상을 내리겠다. 글을 통해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보통상을 내릴 것이다. 시중에서 과인을 비판한 것이 과이인의 귀에 들리면 그 사람에게는 그 다음가는 상을 내리겠다.” 이 포고령이 하달되자 위왕에게 충고를 하거나 위왕의 잘못을 비판 하려는 사람이 줄을 서는 바람에 조정이 마치 시장 바닥과 같았다.
리더의 자기성찰은 곧 국력이다. 민심이 한마음이 되어 국론을 통일시키는 것이 바로 국력이며, 이런 국민과 국가는 다른 나라로부터 멸시당하지 않는 것은 물론 존중을 받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의 자기성찰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민심을 얻는 리더가 성공한다]
민심은 여론과 직통한다. 민심의 흐름과 통치자의 정책에 대한 반응이 여론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대로 “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다”고 했다.
주나라 왕조의 여왕은 포악하고 사치스러우며 교만한 통치자였다. 그러자 백성들의 비방이 끊이질 않았고, 여왕은 위나라의 무당을 불러다 자신을 비방하는 백성들을 감시하게 하고 무당이 고발한 백성들을 잡아 죽였다. 그러자 비방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기고만장해진 여왕은 더욱더 엄하게 백성의 입을 단속했고, 여왕은 더욱 기뻐하였다. 여왕은 대신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고, 3년뒤 결국 주나라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여왕을 내쫓고 국인 혁명을 이루어낸다. 훌륭한 정치가였던 자산은 정치와 정권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진단하고 있다.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인덕으로 다스려야 한다. 정권이 무엇으로 튼튼해지는 것인지 잊어서는 안된다”
4. 조직관리 없이 천하제패는 없다
[조직문화의 복합성과 우정]
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에서는 조직원 사이의 인간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설정되느냐에 라 조직 문화가 달라진다. 또한 그 같은 조직 문화가 조직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이런 조직 문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동료의식이다. 동료의식은 흔히 우정으로 발전하며 우정으로 시작된 관계가 동료의식이 되기도 한다. 이런 조직내의 관계들이 긴밀하고 조화롭게 작용할 때 조직의 리더가 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동료의식과 우정이 혼합된 동양의 조직 사회에서는 공사구분이나 책임과 권한의 분별등과 같이 조직을 바르게 이끄는 가치관들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 인간관계들을 잘 통제할 수 있고 이끌 수 있는 리더가 조직을 성공으로 이끈다.
[내부 사람을 아껴라]
오늘날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력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장 빠르고 경쟁력 있는 정보, 즉 우량 콘텐츠를 누가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조직의 성패를 결정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차별화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런 콘텐츠의 근원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정보와 콘텐츠의 근원은 사람이다. 외부로부터의 정보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함께 일하고 있는 조직원들에 대한 세심한 내부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돌이켜 볼때다. 사실 외부정보도 다 이들이 가져다 주지 않는가? 자기 사람을 홀대하고 무시하는 리더에게 어떤 인재도 달라붙지 않는다.
[덕으로 조직을 이끌어라]
사마천은 국가의 법령이 정치의 도구이기는 하나 백성들의 선과 악, 맑음과 흐림을 다스리는 근본적인 제도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법으로 인간의 본성이나 가치관을 다스릴 수 없다는 말이다. 사마천은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 때는 배를 삼킬만한 큰 고기도 빠져나갈 정도로 너그럽게 법을 적용했지만 관리의 실적은 더 나았고, 백성들은 평화롭게 지냈다면서, “나라의 안정은 도덕의 힘에 있는 것이지 냉혹한 법령에 의존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법령이란 백성들을 잘 이끌기 위한 것이고, 형벌이란 간교한 자를 처단하기 위한 것이다. 법조문과 집행이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선량한 백성들은 겁을 먹는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잘 수련한 사람이 관직에 올랐을 때는 결코 문란한 적이 없었다. 직분을 다하고 이치를 따르는 것 또한 정치를 바르게 하기 위함이다. 어찌 위엄만으로 정치가 되겠는가?”
또한 노자는 “본래 나라(조직)을 다스리는 큰 원리는 아주 쉽다. 군주가 나쁜길로 빠지면 나라가 부패하고, 자연이 훼손된다. 이런 통치자들은 솔직히 극악무도한 강도와 다를 바 없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