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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티노스-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
    참고 자료 2013. 2. 15. 16:29

    플로티노스-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

    그의 철학의 출발점

    플로티노스(Plotinos, 205?~270)1)는 공교롭게도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처음(B.C. 399) 만났다고 술회한 것과 같은 나이인 28세에 이르러 비로소 철학에 눈을 떴다. 그가 느지막이 눈을 뜬 '철학'은 단순히 옛글과 전통적인 가르침의 파편적인 이해나 고립된 지식에 만족하는 배움이 아니라 진정 인간의 삶 전체를 포괄하여 일관되게 반추할 수 있는 온전한 깨달음을 터득하는 일이었다.

    하나의 온전한 깨달음(지식)은 분화되더라도 해체되거나 파기되는 일 없이 그 부분을 통해서도 (중략) 전체를 이해할 수 있듯이, 그렇게 사람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온통 그리고 일관되게 그 본성을 따라 가장 훌륭한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또한 자기 자신(영혼)을 여며야 한다.(Enn. Ⅲ 9, 2, 1~6)2)

    온전한 깨달음과 총체적인 지식을 얻기 위한 그 같은 열의는 일찍이 조선 시대에 퇴계 선생이 연로한 이유로 어린 선조의 사사(師事)에서 물러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성학십도 聖學十圖』를 헌정하는 중에 고사(固辭)한 충정을 연상케 한다. 예컨대 『논어』의 한 구절인 '배우긴 하나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은 하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를 앞서 진언한 퇴계 선생은 이어서 "바라옵건대 밝으신 임금께서는 (중략) 분발하여 배움과 생각이라는 두 가지 공부에 힘쓰십시오. 그런데 (학문에서) 경(敬)을 유지하는 것은 동(動)과 정(靜)에 다 일관해야 하는 것으로 안과 밖을 합치하고 현(顯)과 미(微)를 하나로 하는 방법"3)이라고 간청한다.

    플로티노스가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낸 알렉산드리아는 당시에도 이미 대도시였던 만큼 이름 있는 선생들이 많이 모여들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가 참된 스승을 찾아 배회하며 애썼던 노력에 비해 만족스러운 가르침을 접하지 못했다고 제자인 포르피리오스(Porphyrios, 233~304)는 전한다. 여기에서 그가 어떠한 배움에 애태워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플로티노스는 처음 자신의 지적 궁금증을 채워준 스승인 암모니우스 사카스(Ammonius Saccas)를 만났다.

    이 사람은 아직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사카스란 별명이 '자루(보따리)를 걸머진 사람'이란 의미로 해석되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홀로 구도의 길을 걷던 인도의 고행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어쩌면 플로티노스의 사상 안에서 인도의 구도적인 태도와 유사한 흔적을 엿볼 수 있기에 그런 추정이 지금까지 계속 유효하게 고려되어 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플로티노스 스스로가 자신의 참스승으로 지목하고 고백한 인물은 바로 플라톤이다. 스승에 대한 그의 존경심에는 신적인 경외감과 더불어 극진한 예의가 배어 있다. 스승 플라톤의 탄신 축제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지냈을지언정, 자신의 생일은 물론이거니와 사사로운 정보(신분, 출생지, 결혼 및 자녀 등)에 대해 절대 입에 담지 않도록 제자들에게 금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플로티노스의 또 다른 통찰, 곧 인생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깊게 작용한 탓도 크다 하겠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일화에는 인생의 육체적인 측면에 대한 그의 절제된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제자 아멜리오스(Amelios)가 화가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스승의 초상을 그려 간직하려고 했지만, 허락받지 못하자 그 화가가 스승의 강의에 여러 번 참석하여 스승의 얼굴을 기억해냄으로써 초상을 그릴 수 있었다는 일화에서 플로티노스의 그와 같은 독특한 인생관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거절한 이유는 인간에게 육체는 '그림자'에 불과하니, 초상이란 기껏 '그림자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만큼 하찮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음이 지혜롭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칼릴 지브란이 남긴 우화 「사막의 여우」가 떠오른다.

    사막의 한 작은 동굴에 여우가 살았다. 여우는 아침 해가 솟을 무렵 굴 밖으로 나왔다. 한껏 기지개를 켜면서 길게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돌아다보며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오늘 점심으로 낙타 한 마리면 되겠군!" 힘차게 동굴을 나선 여우는 반나절 동안 사막을 누비며 헤맸지만 생쥐 한 마리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한낮이 되어 크게 낙심한 여우는 떨거진 고개로 어느덧 발아래 잦아든 제 그림자를 문득 바라보고서야 한숨을 토하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생쥐 한 마리면 족한 걸!"

    우리의 포부와 기대에 찬 미래는 무엇을 근거로 설계해야 바람직할까? 그림자는 태양에 의해 좌우되는 만큼 의존적이며 변화무쌍하다. 그림자는 이렇듯 실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올바른 척도가 못 된다는 교훈으로 위의 우화를 이해한다면, 플로티노스의 입장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서 그의 초상화와 관련된 일화는 분명 인간의 실체로서 영혼에 대한 플로티노스의 남다른 관심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표석(標石)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영향을 누구보다도 플라톤에게서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의 영혼에 대한 해명은 플로티노스에게 더욱 확장된 차원에서 인간의 자기해명 혹은 진정한 '자신 찾기'의 근간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영혼은 더 이상 자기 육체뿐만 아니라 경험을 통해 만나는 온갖 물질과 사태에 대해 그때마다 그 의미를 확정하는 "해석자(ἑρμηνευτική, Hermeneutike)"(Enn. Ⅳ 3, 11.19)로까지 강조하며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플로티노스의 이 같은 통찰은 분명 오늘날에도 자신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진지한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기대해봄직하다.

    그러나 여기서 제기되는 또 다른 의문을 가지고 플로티노스의 철학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플로티노스에게서도 결국 플라톤의 경우처럼 '육체'는 "영혼의 굴레" 혹은 "무덤"(Phaidon, 62b)이라고 단정해도 좋을까?4) 그래서 만일 그렇듯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의미에서의 '육체'를 기억해야 한다면, 과연 육체와 영혼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하나-됨(統一性)은 무슨 의미를 띨 것이며, 나아가 도대체 그의 중심 개념 인 '하나'는 어떤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이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적인 시각을 염두에 두면서 플로티노스의 철학을 재고해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은 이 작은 책을 넘어서 플로티노스의 작품을 직접 읽어가며 통해 계속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옳을 것이다.



    출처

    플로티노스-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 조규홍, 2006.11.30, ㈜살림출판사- 살림지식총서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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