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상(坐像). 송마린(宋馬麟) 그림. | |
ⓒ2003 동서문화사 |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치세(治世)는 사는 것이 힘들지 않다. 그러나 도의가 붕괴한 난세에 바로 산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슬기로운 지혜가 필요하다.
장자는 세속적 속박에서 벗어나 우(憂)와 고(苦)가 없는 자유로운 세계에서 유유자적의 생애를 보내려면 어떤 철학,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이렇다. 무위자연(無爲自然)대로 사는 것이요, 명리(名利)를 초월하는 것이요,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요, 소아(小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탈속의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 장자의 목표였다. 이러한 사상을 담은 것이 그가 쓴 명저 '장자'라는 책이다. 그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가지고 유려한 명문으로 그의 사상을 피력했다. 그는 참으로 고금독보 (古今獨步)의 사상가다.
가장 이상적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어떤 것일까.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인무기(至人無己), 신인무공(信人無功), 성인무명(聖人無名)'의 열두 자다. 장자의 '내편 소요유' 에 나오는 말이다.
지인은 지극한 경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요, 신인은 신과 같은 높은 경지에 이른 도통(道通)한 사람이요, 진인은 허(虛)와 위(僞)가 없는 참사람이다. 지인은 무기다. 기(己)는 나요, 자기요, 자아다. 무기는 사심(私心)이 없는 것이요, 이기심을 버린 것이요, 사리사욕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요, 자기욕심을 떠난 것이다.
인간은 나라고 하는 조그만 자아의 이기심과 사리사욕에 얽매여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많은 불안과 걱정과 불행과 고뇌가 생긴다. 이기적 소아(小我)에서 벗어나면 인간은 마음이 활달하고 생각이 넓어져서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무기는 사심과 사리사욕을 버리는 것이다.
▲ 추석을 맞아 조상님의 산소를 벌초했다. 이발한 것처럼 깨끗하다. |
ⓒ2003 느릿느릿 박철 |
이것이 모두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이다. 이러한 어리석고 옹졸한 마음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저절로 자유롭고 활달해진다. 조그만 자아에 집착하지 말라. 대수롭지도 않은 일을 자랑하려고 하지 말라. 이것이 무공이다. 성인은 무명이다. 성인은 아무리 크고 뛰어난 공적을 쌓아도 그 공적에 따르는 명예를 구하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자기의 이름을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은 명예욕의 노예가 되고, 허욕에 사로잡혀서 자기의 이름을 내세우려고 애를 쓴다. 명리에 사로잡히지 말라. 자기의 명예와 이익에 집착하지 말라. 이것이 무명이다.
장자는 삼무(三無)를 강조했다. 기(己)와 공(功)과 명(名)을 버려라. 이기심과 공명심과 명예욕에서 벗어나라. 그리하면 반드시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면 천지자연을 마음대로 소요(逍遙)하면서 유유자적의 활달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지인, 신인, 성인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다.
▲ 가을이 점점 깊어져 간다. 벼가 고개를 숙인다. 곧 낫을 댈 때가 올 것이다. |
ⓒ2003 느릿느릿 박철 |
근자의 우리나라의 정치판을 보면서 장자의 가르침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트린다’고 했는데
지금 정치인들 하는 꼴이 그와 같지 않은가. 장자의 가르침은 바로 나를 보게 한다. 자기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눈 먼 사람이다. 가을이 점점
깊어져 간다. 장자의 잠언(箴言)을 하루에 한 구절이라도 읽고 묵상하면 좋을 듯싶다.
/박철 기자
(pakchol@empal.com)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박철 기자는 강화 교동섬에서 사는 목사이며 시인이다.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전국회장을 역임했으며 20년 가까이 농민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다. 저서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신어림) “어머니의 아침”, “봄/여름/가을/겨울”(녹두)등이 있으며,
뉴스앤죠이(http://newsnjoy.co.kr)에 “내가 만난 사람들”이라는 글을 매주 연재하고 있다. 그의 가족홈페이지
느릿느릿이야기(http://slowslow.org)에 가면 그의 사진과 포토에세이, 시, 묵상, 꽁뜨 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