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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과 현대경영의 만남 - <11> 장자(莊子)와 파괴 경영
박재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서로 다름을 알고 나만 옳다는 생각 부숴야
장자라고 하면 나비의 꿈이 가장 많이 일컬어지고 있다. 꿈 속에서 나비가 되어 노닐다 깨어 보니 이게 현실이고 그게 꿈이었는지, 그게 현실이고 지금 나비가 사람이 된 꿈을 꾸는 건지, 도무지 그 경계가 모호하더라는 장자의 이야기는 현실과 꿈, 삶과 죽음, 너와 나, 옳고 그름,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또 다른 세계의 양립된 모습이 아닌가 하는 파괴적인 사고를 대변하고 있다.
즉 발상의 전환이다. 내가 이미 알던 내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발상을 전환해 나조차 모르던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한 길, 그것이 장자의 이야기다.
같은 인재를 두고 누군가는 그를 자신이 원하는 업무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쓸모없는 사람으로 방치하지만 누군가는 그의 능력을 새로운 곳에 사용한다. 이것이 이 우화의 핵심이다.
거대한 물고기에서 다시 거대한 새가 되었다 하더라도 또 다른 환경이 발생한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자신을 부숴버리는 발상의 전환, 그리고 큰 방향이 잡혀야 한다.
▶가치 혁신(Value Innovation)
레드마켓(Red Market)이 아닌 블루마켓(Blue Market)을 지향하고자 한다면 원래 알던 우리의 가치관을 엎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기존 가치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장자의 우화 하나를 소개한다.
어느 날 혜자(惠子)라는 자가 장자를 찾아와 이야기하기를, ‘내게 아주 큰 박이 생겼는데, 너무 커서 딱히 쓸모가 없더라, 그래서 깨버렸다’고 했다. 그러자 장자가 답하기를, ‘송나라에 세탁부가 있었는데 그는 손 안 트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객이 지나가다 그에게서 그 비방을 큰돈을 주고 사고자 해서 비방을 얻었다. 그 객은 오나라 왕에게 이 비방을 다시 팔려고 하는데 그때가 마침 월나라와 수전을 하려던 참이라 왕이 그 객에게 장수를 시켰다. 장수는 손 안 트는 약을 만들어 군수품으로 활용해 전쟁에 크게 이길 수 있었고, 왕은 그에게 땅을 상으로 주고 영주로 봉하였다’고 했다. 손을 안 트게 하는 약을 만드는 비방으로 누군가는 빨래한 후에 손을 보호하는 데밖에 쓰지 못했는데, 누군가는 수전에서 군수품으로 활용해 영주가 되었다. 그 차이는 결국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다.
송인유선위불구수지약자(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 객문지(客聞之), 청매기방이백김(請買其方以百金). 객득지(客得之), 이설오왕(以說吳王). 월유난(越有難), 오왕사지장(吳王使之將), 동여월인수전(冬與越人水戰), 대패월인(大敗越人), 열지이봉지(裂地而封之). 능불구수(能不龜手), 일야(一也). 혹이봉(或以封), 혹불면어병벽광(或不免於), 즉소용지이야(則所用之異也).
같은 기술로 전혀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발상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인재를 두고 누군가는 그를 자신이 원하는 업무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쓸모없는 사람으로 방치하지만 누군가는 그의 능력을 새로운 곳에 사용한다. 이것이 이 우화의 핵심이다.
▶장주(莊周) : 사기(史記) 속의 장자(莊子)
사마천의 《사기》에는 장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장자는 ‘몽’ 지역의 사람으로 이름은 주다. 그는 그 지역의 옻칠용 나무를 기르는 정원 관리자였고, 양혜왕과 제선왕 시기의 사람이다.
장주는 어떤 분야도 공부하지 않은 바가 없는, 넓은 영역에 걸친 지식인이었으나 그가 추구한 근본과 가치는 노자의 《도덕경》에 귀결되고 있다. 그가 쓴 저서는 10여 만 자에 달하고 그 내용은 모두 우화와 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많다.
장자자(莊子者), 몽인야(蒙人也). 명주(名周). 주상위몽칠원리(周嘗爲蒙漆園吏). 여양혜왕제선왕동시(與梁惠王齊宣王同時). 기학무소불규(其學無所不), 연기요본귀어로자지언(然其要本歸於老子之言). 고기저서십여만언(故其著書十餘萬言), 대저솔우언야(大抵率寓言也).
초나라의 위왕이 장주가 현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큰돈을 주고 재상 자리로 모시려고 사신을 보냈다. 장주가 자신을 찾아온 초나라 사신에게 말하기를, ‘천금은 큰돈이고 재상은 높은 자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제사를 지낼 때는 소에게 잘 먹이고 좋은 옷을 입혀주지만 결국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가? 그 소가 그때 가서 후회하며 그냥 더럽고 배고프고 초라한 돼지의 처지를 부러워한들 무슨 소용인가? 나도 그냥 이 더럽고 초라한 시골 언덕에서 혼자 유쾌하게 사는 게 좋지, 권력자들의 말 안장 노릇은 하지 않겠다’고 하고, 그는 죽을 때까지 벼슬을 하지 않았다.
초위왕문장주현(楚威王聞莊周賢), 사사후폐영지(使使厚幣迎之), 허이위상(許以爲相). 장주소위초사자왈(莊周笑謂楚使者曰) 천금중리(千金重利) 경상존위야(卿相尊位也). 자독불견교제지희우호(子獨不見郊祭之犧牛乎) 양식지수세(養食之數歲), 의이문수(衣以文繡), 이입대묘(以入大廟). 당시지시(當是之時), 수욕위고돈(雖欲爲孤豚), 개가득호(豈可得乎)? 자극거(子去), 무오아(無汚我). 아녕유희오독지중자쾌(我寧游汚瀆之中自快), 무위유국자소기(無爲有國者所羈), 종신불사(終身不仕), 이쾌오지언(以快吾志焉).
우리의 부귀와 영화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가 좋은 옷과 음식에 빠져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믿고 있는 과정이 사실은 자신의 인생을 우리 의지와 무관한 어떤 외부 환경, 더 높은 자리에 앉은 권력자에게 재물로 바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꾸리지 못하고, 좋은 옷과 음식에 혹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자의 신인류 - 진인(眞人)
성인, 대장부 등과 마찬가지로 장자도 지향한 이상적인 인간상이 있다. 진인, 즉 참사람이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지금의 거짓 나를 벗어야 한다. 그 방법을 위해 몇 가지 진인의 특성이 언급되었다.
△진인무기(眞人無己)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깨뜨려야 할 내가 너무 많다.
강을 지키는 신인 하백이 강에서는 자신이 세상의 최고인 줄 알다가 바다를 만나게 되어 충격에 빠진다. 그것을 본 바다의 신이 하백에게 말하기를, ‘우물 안 개구리는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있기에 바다를 이해할 수 없고, 여름철 벌레는 짧은 여름이라는 시간에 갇혀 있어 얼음에 대해 이해시킬 수 없다. 시골 선비는 자신이 배운 내용에 묶여 있어 새로운 도를 알려줄 수가 없다’고 했다.
북해약왈(北海若曰), 정와불가이어어해자(井蛙不可以語於海者), 구어허야(拘於虛也). 하충부가이어어빙자(夏蟲不可以語於氷者), 독어시야(篤於時也). 곡사불가이어어도자(曲士不可以語於道者), 속어교야(束於敎也).
△포정해우(丁解牛)
백정이 소를 잡듯, 칼을 다치지 않게.
어느 백정이 소를 잡는 데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발휘한다. 남들이 방법을 묻자, 그가 답하기를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 전체 모습밖에 못 보았다. 그러다가 3년을 소 잡는 일을 하니 소의 각 부위가 눈에 들어왔고, 10년을 넘기자 뼈와 살 사이의 칼이 지나갈 자리가 눈에 들어오더라’고 했다. 소의 살과 뼈 사이의 공간을 읽어내는 안목, 그것은 소라는 그 현상을 눈앞에서 부숴야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시효빈(東施效嚬)
서시의 미모를 부러워하던 그녀가 한 행동은?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명인 서시(西施)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서시가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칭송하자 동시(東施)라는 여인이 그 비결이 뭔지 알려고 따라다니다가 서시가 얼굴을 찌푸리는 걸 보고 그걸 따라 했다고 한다. 그러자 당연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예뻐하지 않았다. 모두에겐 자신만의 매력이 있는데 그것을 알지도, 활용하지도 못하고 남을 따라 하기만 하면 결국 못난이가 될 수밖에 없다. 나만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큰 나무가 있었다. 가지가 크고 멀리 뻗었으며 둥치가 거대한 나무이나, 그 모양은 전혀 아름답지 않고 뒤틀린 형태라 별 쓸모도 없었다. 그래서 행인도 목수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나무는 쓸모없기에 잘려버리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 쓸모가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단순하고 좁은 용도 속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무용(無用)에서 유용(有用)을 찾는다. 즉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재목이 못 되지만 그로 인해 이 나무는 잘리지 않고 이토록 큰 나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불재지목야이지어차기대야(不材之木也以至於此其大也).
▶시간·장소·지식의 고정관념을 깨라
사람은 습지에서 살면 몸이 망가지지만 미꾸라지는 습지에 사는 것이 맞다. 사람이 나무 꼭대기에서 살면 어지럽고 괴롭지만 원숭이는 어떠하겠는가? 그렇다면 ‘바른 장소’라는 게 과연 무슨 의미겠는가? 마찬가지로 사람은 고기를 먹지만 사슴은 풀을 먹는다. 미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시는 아름답지만 그녀는 원숭이나 말, 물고기에겐 전혀 아름답지 않다. 이같이 서로의 다름을 알고 자신의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늘 옳다, 내 눈이 정확하다고 생각한 것을 부숴야 한다.
▶누가 진정한 승자인가
장자가 밤나무 아래에서 까치를 보고 예쁘다는 생각에 잡으려고 돌을 들고 노리는데, 가만히 보니 그 까치가 자기 앞의 사마귀를 노리느라 바쁘고, 사마귀는 자기 앞의 매미를 잡으려 하고 있고, 그 매미는 아무것도 모르고 노래하고 있었다. 매미, 사마귀, 까치, 그리고 장자 자신. 그중에 누가 진정한 승자일까라는 생각에 그가 잠시 돌을 내려놓는 순간, 등 뒤에서 밤 서리꾼을 잡으려던 밤나무 주인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진짜 세계다. 지금의 내 승리에 도취하는 순간 우리는 또 누군가에게 노림의 대상이 된다.
북쪽 바닷가에 곤이라는 물고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 크기가 어찌나 큰지 몇 천리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 물고기가 어느 날 새로 변해 그 이름을 붕이라고 불렀다. 붕도 어찌나 큰지 등이 몇 천리가 되었다.
붕은 바다가 움직이는 때에 남명을 향해 날아가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새는 화를 끌어올리고 날개를 펼치니 그 크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았다. 그 큰 날개를 떠받들 거대한 바람을 위해 새는 구만리 위로 솟구쳐 바람을 탔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어떠한 장애물도 거침없이 헤치고 남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북명유어(北冥有魚), 기명위곤(其名爲鯤). 곤지대(鯤之大), 부지기기천리야(不知其幾千里也). 화이위조(化而爲鳥), 기명위붕(其名爲鵬). 붕지배(鵬之背), 부지기기천리야(不知其幾千里也). 노이비(怒而飛), 기익약수천지운(其翼若垂天之雲). 시조야(是鳥也), 해운즉장사어남명(海運則將徙於南冥). 남명자(南冥者), 천지야(天池也). 풍지적야불후(風之積也不厚), 칙기부대익야무력(則其負大翼也無力). 고구만리(故九萬里), 즉풍사재하의(則風斯在下矣), 이후내금배풍(而後乃今培風). 배부청천(背負靑天) 이막지요알자(而莫之夭閼者), 이후내금장도남(而後乃今將圖南).
거대한 물고기에서 다시 거대한 새가 되었다 하더라도 또 다른 환경이 발생한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노기를 이끌어내 끓어오르는 화로 지금의 현실을 부정해야 한다. 자신을 부숴버리는 발상의 전환, 힘찬 바람과 같은 충분한 환경, 등 뒤에 하늘을 지고 있는 듯한 조건, 그리고 큰 방향이 잡혀야 한다. 자, 대붕이여, 하늘의 연못을 향해 날아오르자.
정리=박지민 dali@pos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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