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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道)의 현대적 의의(意義) by 이동식 선생
    좋은 글 2016. 5. 16. 15:27

    ◈ 도(道)의 현대적 의의(意義)

     

    李 東 植 (한국정신치료학회 명예회장)

     


    I. 왜 도가 문제가 되나?

     

    도에 대한 관심은 두 갈래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고 하나는 우리 내부에서 우리 것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다.


    서양에서의 도에 대한 관심은 서양문명으로서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고 정신분석, 현대물리학, 종교, 철학, 문학,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생적(自生的)인 것에 동양의 도가 연결된 것이고 한국에서는 이러한 서양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이러한 서양의 물결의 영향을 받으면서 (예, 신과학운동의 소개) 외래문화의 지나친 침투에 대한 주체적 문화를 추구하는 흐름이 있다.


    21세기는 서양문화가 동북아의 전통과 융합이 되어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느니 태평양시대에서 동서를 통합할 수 있는 민족은 중국인도 인도인도 일본인도 아닌 한국민족이 제일 적합하다는 소론(所論)이 나오는 까닭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전통(傳統)과 우리의 심성(心性)때문이다.


    Lewis Mumford는 과거 300년의 서양의 역사는 야만과 붕괴의 역사라고 지적하고 해결책으로 자기검토, 자기이해, 자기기율(自己紀律), 자기제어(自己制御)를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의 핵심이다. 이것은 르네상스가 자아의 각성이 아니라 본능의 각성이고 해방이기 때문이다.


    서양문명의 특징은 플라톤 이후 모든 것을 개념화ㆍ이론화함으로써 주관과 객관, 정신과 물질 또는 신체,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분리 대상화하는 것이고, 오늘날의 서양문명의 위기는 여기서 오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이러한 위기의 증상을 열거하면 한마디로 <현대인의 소외>란 말로 표현된다. 구미(歐美)의 노련한 정신분석자 정신치료자들의 공통적인 외침이 서양인은 성공과 업적의 노예가 되어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소외되어 정(情)이나 정열을 상실한 자동기계 내지 고립된 존재라고 말한다. 또 다른 표현을 빌리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 잠재능력을 성취 실현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고, 근대화는 정신적인 불안(spiritual malaise) 소외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다.

    과학적 근대화는 인간성을 박탈하고 감정을 주관적이라고 배격하고 애정의 감정을 상실케 하고 인간관계가 기계적으로 되어 모든 인간을 고독에 빠지게 하고 있다. 또한 인간과 세계를 분리하고 환원주의(reductionism)는 탈인간화(dehumanization)를 초래하고 인간의 주체성을 상실케 하고 자존심을 저하시키고 자기애에 빠지게 하고 기대저하를 초래한다. 한마디로 과학이 정신적 가치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토인비가 말한 단편화(fragmentation)란 말로 특징지을 수도 있다.

    과학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부분만을 인식하고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 거꾸로 자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배’가 아닌 동양적인 ‘참여(參與)’로써만이 전체적인 인식을 가능케 한다. 이는 데카르트의 이분법의 결과이며 이것을 탈피하자는 것이다.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 있다. 이것이 초기 그리이스 철학자나 도(道)의 이상이다(우주는 전일(全一)하고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과학이 나와서 세계와 인간을 분리함으로서 공허감과 고독이 온다. 한마디로 주객의 분리에서 오는 것이고 이성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의 혼동에서 온다고도 볼 수 있다. 프리브람(Karl Pribram)은 rational은 harmonic하고 musical하다고 말한다.


    인과율의 부정이나 선적(線的)인 발전이 없다는 주장, 과학을 인간화해야겠다는 주장이나, 코르지브스키(Alfred Korzybski)의 지도(地圖)는 영토(領土)가 아니라는 표현, 빗드켄슈타인의 철학 등 모든 것이 도를 지향하는 것과 일치해 가고 있다. 이는 불교에서 달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유사하다. 도는 주객일치요 주체성이고 휴머니즘의 극치요 우주의 원리이고 궁극적인 실재(實在)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도화(道化), 도의 과학화 그리고 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동양사상과 과학, 정신분석, 정신치료와의 관련에서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II. 도와 현대과학

     

    서양의 과학이란 피히트(Georg Picht)는 「서양의 형이상학 즉 플라톤의 형이상학에서 파생된 것이고 플라톤의 형이상학은 이론에 토대를 두고 있고 이론은 논리에 입각하고 있으며 논리는 독단(Dogma)이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고 그러므로 「서양문명은 인간과 자연, 문화를 파괴한다」고 했다. 그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성찰(Meditation)이라고 불렀다. 근대과학은 역사적으로는 르네상스의 절정기에 출연한 것이다. 데카르트(Descartes)에 이르러 정신과 물질은 분리되고 이것을 토대로 뉴튼(Newton)의 고전물리학이 수립되어 모든 과학의 모형이 되었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의 절대공간(絶對空間)이나 질량적 물질이 부정되고 인과율이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서 부정되고 고전물리학의 주관이 배제된 객관이 허구임이 밝혀져 주객일치의 동양사상[道]의 주관주의(主觀主義)로 현대물리학이 접근을 강요당하고 있다.


    19세기 말 전자장(電磁場)현상의 이론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관찰의 대상과 관찰자의 관계를 세밀하게 분석해서 상대성원리를 수립했고 절대공간이나 절대시간이 없으며 입자는 실체가 없고 ‘과정(過程)’ ‘작용(作用)’이며 주관을 떠난 객관적인 관찰이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참여적 관찰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말하자면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 관찰은 관찰자 자신이 자각하지 못한 주관의 투사(投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다음 제3절에서 다룰 도의 핵심이다. 브리지먼(Percy W. Bridgman)이나 폴라니(Michael Polanyi)의 ‘진리는 사적(私的)인 것이지 공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도는 깨달은 사람만이 안다는 것과 상통한다. 폴라니의 과학적 발견에 대한 견해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기보다 이미 알려진 사실을 설명하는 메카니즘이나 System을 발견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고(코페르니쿠스, 뉴튼, 다윈, 아인쉬타인), 이것은 형태심리학에서 말하는 Gestalt의 지각과 유사한 것이다. 역(易)에서 말하는 상(象)과 비교해 볼 만하다.


    「Spontaneous Emergence」이고 재편성(reorganization)이고 위대한 발견은 명백한 것을 깨닫는 것이고 직관이다. 「궁극적으로는 개인적 판단, 즉 양심으로 귀결된다」. 과학은 예술이라고 마즐로우(Abram Maslow)는 과학이 기계화되어 비인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간주의적 과학을 제창하면서 수동적인 도적(道的) 태도(Passive Taoist attitude)를 강조했다.


    동물실험에서는 실험동물의 성격이나 내적 생활사, 과거의 관계 그리고 실험자의 성격과 동물과 실험자의 관계가 실험 성적을 좌우한다는 것이 알려졌고 대뇌생리학에서는 뇌의 구조가 광범투영계(廣汎投影系)와 특수투영계(特殊投影系)로 나뉘어져 신체내부와 오관(五官)을 통해서 들어오는 외부에 관한 정보가 한 갈래는 대뇌피질 전체로 퍼져나가고 한 갈래는 지각중추로 퍼져나간다. 전자를 광범투영계라 하고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직관이고 후자는 특수투영계로서 사물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하나 분석을 한다. 우리의 사물지각은 이 두 가지 기능의 종합으로써 완전하게 된다. 직관은 동양적 전체지각(全體知覺)이고 분석은 서양적 분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종전에는 우측뇌의 기능이 분명치 않던 것이 근래의 연구로는 심미 통찰 예술활동에 종사하고 좌뇌는 논리적 사고 분석에 종사한다는 주장이 있다. 미국의 피셔(Roland Fisher)는 황홀상태와 좌선이나 요가의 삼마지(三摩地) 등의 명상상태를 대뇌생리학적으로 뇌파 등으로 규명하고 무의식과 의식이 일치하는 경지가 입신(入神)의 경지고 의식이 무의식을 완전히 자각 지배하는 경지가 우리가 말하는 성인(聖人) 불(佛) 신선(神仙)의 경지라는 것을 결론지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도란 자기제어(自己制御), 극기(克己), 자기조복(自己調伏)이기도 하기 때문에 Bio- feedback이 또한 도의 생리학적 근거를 명시해 주고 있다. 과거에는 주관적이어서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없던 것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심부지각 내부지각 조건화의 연구는 특정한 근육군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전자장치를 통해서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자율신경의 지배 하에 있는 내장 위장 심장혈관운동의 제어, 체온이나 근육긴장의 제어 그리고 도승(道僧)이 삼매경에 들어가 있을 때의 뇌파를 만들어 내는 훈련을 하는 알파파(波) Biofeedback 훈련이 있다. 이것을 Technological Meditation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도의 과학화 또는 기계화라고 볼 수 있으며 수도(修道)의 전체성에 비해서는 역시 과학적 방법의 단편성을 면치 못하나 수도의 물질적인 생리적 근거를 천명해 주는 뜻에서는 도의 해명에 일조가 된다고 본다. 또는 동양의학에서 “이도요병 신위일신지주”(以道療病 神爲一身之主)라는 생각은 서양의학이 20세기에 와서 비로소 발전시킨 사상과 일치한다.


    이상 현대과학과 도와의 관계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으나 다음에는 도의 종교적 철학적 정신치료적인 면을 밝힘으로써 도가 무엇인가를 소개하고져 한다.



     

    III. 도의 종교적 철학적 정신치료적 의미

     

    도는 주객일치요 우주요 원리요 주체성이고 무위(無爲)고 부처고 성인(聖人)이고 지인(至人)이고 진인(眞人)이며 무기(無己), 무아(無我), 무념(無念), 인격의 성숙이요 정심(淨心)이고 정심(正心)이라고 무한히 말할 수 있다. 말로써 할 수 없기 때문에 도를 깨친 사람이 깨치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깨친 소리를 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왓쯔(Alan Watts)는 동양의 유교, 불교, 노장(老莊), 힌두교 등을 서양적인 개념으로는 종교도 철학도 아니고 정신치료라고 말했다.


    수도의 목표는 마음이 맑은 거울과 같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주도록 맑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양의 정신분석이나 정신치료에 있어서는 부정적(否定的)인 힘의 분석 해결을 위주로 해 왔으나 불교의 선(禪) 특히 간화선(看話禪)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힘을 총동원해서 부정적인 힘인 애응지물(碍膺之物)을 녹이는 것이다. 나와 현실 사이에 놓여 있으면서 현실을 흐리게 하는 세 가지 베일이 있다. 첫째는, 개인적인 정서적 경험 즉 불교에서 말하는 별업망견(別業妄見)이고, 둘째는 문화 즉 불교에서 말하는 동분망견(同分妄見)이다. 셋째로는 유기체 즉 신체의 제한성(制限性)이다.


    서양의 정신분석이 주로 개인적인 정서적 문제를 해소시킨다면 선은 개인적인 별업망견과 문화적인 동분망견의 베일을 걷어치우고 유기체의 베일마저 없앰으로써 현실과 나를 직결시켜서 진여(眞如)에 이르는 것이 목표다.


    「대승기신론」의 기술(記述)에 보면 부처는 업식(業識)을 정화함으로써 백정식(白淨識)이 되어 삼라만상을 맑은 거울과 같이 비추어준다. 부처의 다음 단계인 보살은 업식의 흔적이 남아있고 전식(轉識), 현식(現識), 지식(智識), 상속식(相續識)이 완전히 정화된 상태를 말한다. 업식에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 전식, 현식, 지식, 상속식인데 현식까지가 무의식이고 지식, 상속식은 의식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이 보살의 기술(記述)은 서양의 정신분석에서의 성숙된 분석자의 기술과 흡사하다. 성숙된 분석자는 무의식적인 주동기(主動機)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이것을 자각하고 제어해서 환자 이해와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고 자기 집안이나 국가ㆍ민족뿐만 아니라 전인류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보살행).

    불안을 처리하는 각도에서 본다면 서양의 정신분석자, 실존철학자들, 정신치료자들은 최고의 정신분석치료도 병리적이고 신경증적인 불안은 없앨 수 있지만 정상적이고 실존적인 존재론적(存在論的)인 불안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없앨 수 없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그러나 선에서는 생사지심(生死之心)을 타파함으로써 정상적인 실존적 불안마저 없애자는 것이다. 실존철학은 죽음에 대한 불안의 자각이고 도의 입문이고 보스(Medard Boss)의 말을 빌리면 최선의 서양의 정신분석수련도 정심(淨心)의 입장으로 보면 입문에 지나지 않는다. 도의 현대적 의의는 서양문명이 신(神)이라는 지주(支柱)와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서 자신을 해방시키려고 했지만 오늘날 신이란 지주의 상실과 도구의 배반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데 대한 치료제라는 점에 있다. 신경병적(神經病的)인 문명을 치료하는 건강문화를 지향하는 의미가 있다.


    동양인은 서양과 반대로 적어도 2500년 이전부터 이러한 모든 위험을 예견했었다. 동양인의 중심적인 관심은 이러한 인격신(人格神)과 도구로부터의 해방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내부를 성찰, 검토하고 자기를 제어(制御) 조복(調伏)하고 자신의 주인공이 되어 진정한 자아를 찾는 노력이었다. 이것이 곧 도(道)요, 주체성이고 동양의 휴머니즘이고 휴머니즘의 극치다. 서양문화는 플라톤 이후 정심(Catharsis)을 해야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할 뿐 실천을 해 오고 있지 않았다. 최근에는 정신분석의 뒤를 이어 실존분석 현존재분석 인간주의심리학 가깝게는 무아심리학 무아심리치료가 도를 지향하고 있다.

     

    IV. 결 어

     

    동양인은 외적 세계를 인식하고 지배하는 기술(技術)을 천시하고 내적 세계를 이해하고 정복하는 것을 지상(至上)의 목표로 삼고 도를 숭상해 왔다.


    오늘날 서양인은 외적 세계의 정복에서 자기이해와 자기 지배 없이는 자기파멸의 위험이 증대됨을 깨닫고 인간의 내부세계의 이해와 자기지배(自己支配) 인간성숙의 필요성을 느끼고 실존사상, 정신분석, 신경생리학에서는 인간내부의 이해와 지배, 인간의 성숙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와 병행해서 동양의 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한편 동양에서는 과거에 외부세계 정복을 천시한 전통으로 과학기술의 발달이 뒤진 결과 서양의 침략을 받고 빈곤에서 허덕이던 쓰라린 경험에서 급속히 과학기술을 도입하려는 나머지 우리의 도를 완전히 무시하고 파괴하고 근대화로 달음질해 왔었다.


    그러면서 서양문명은 전세계를 뒤덮어 기계화, 조직화로 외적 지배를 강화해 감으로써 인간의 내적 지배는 약화되는 비인간화, 인간상실, 자기상실로 달음질치고 있다. 여기에서 절실하게 현대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치료제로서 도의 지대한 의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는 존재(存在)요 주체성이고 자각이며 자기지배요, 내적지배(內的支配)인 동시에 최고의 성숙이요, 자유이고 또한 자율이며 건설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양인의 근대화는 서양의 전통적인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동양의 전통적인 도를 섭취하는 것이고 동양인의 근대화는 동양의 전통적인 도를 토대로 서양의 전통적인 과학을 섭취하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라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우리 전통의 핵심인 도(道)다.


    우리는 이러한 도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섭취해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주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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