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의 이론에 대한 평가
융의 이론은 임상적인 차원에서 출발했다.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는 단어 연상을 통해 콤플렉스의 존재를 확인했고, 무의식의 영역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도 더 넓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계속된 탐구를 통해 그는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원형,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 자기)을 하나씩 접하면서 그 성격을 파악해 나갔다. 비록 물리적 증거까지는 없었지만 융은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서, 그리고 비정통적인 접근까지 불사해 가면서 그 존재를 규명했다.
그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융은 항상 프로이트의 광휘에 적잖이 가려진 느낌을 준다. 물론 활동 시기나 업적이나 명성에서 프로이트가 더 먼저인 것은 사실이며, 한때 융이 프로이트 학파에 소속되었다가 독립함으로써 사제관계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융은 프로이트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신예 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융을 프로이트를 계승한 2인자로 치부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양쪽에 대한 비교가 사상적 특색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긴 하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제공했다면, 융은 무의식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양화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억압에 의해 이루어진 부정적인 요소로 간주한 반면, 융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집단의 무의식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가정함으로써 무의식이 오히려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창조적인 기능을 발휘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해방을 도모했다면, 융은 무의식과의 화해를 의도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융의 이론이 처음부터 끝까지 각광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며,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사상이 “도처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쳤다고 한탄하곤 했다. “나는 나의 저술에 대해서 어떤 뜨거운 공감을 기대한 적이 없다 (...)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특히 연구 초기에는 완전히 외톨이가 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의식세계에 대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범성욕주의로 비난을 받았듯이, 융의 이론도 비과학적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특히 신화와 종교는 물론이고 영지주의, 연금술, 만다라, 도교, 주역, UFO에 대해 연구한 글은 워낙 모호하고 불투명해서 갖가지 해석과 오해를 불러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비하자면 융의 이론은 뚜렷한 체계나 개념을 잡기가 힘들다고 평가된다. 정신의학자 앤터니 스토는 프로이트에 비해 “융이 이처럼 도외시된 것은 그가 자신의 사상을 쉬운 용어로 잘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있는 사실을 기술하고, 토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견해를 제시할 뿐입니다.” 융은 자기 이론이 (프로이트의 경우처럼) 도그마로 변질되지 않게끔 포괄적 이론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개별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만을 도모했다. “나는 자주 나의 정신치료법이나 분석방법에 관해 질문을 받는다 (...) 치료법은 각각의 사례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그의 이론이 개인적 경험을 넘어 보편적 이론이 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융의 이론에 담겨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 사람들도 많았다.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융과 함께 ‘동시성’ 이론을 연구했고,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와 조지프 캠벨은 융의 이론을 종교와 신화 연구에 적용하여 대중화시켰다. 정신과의 임상 치료에서부터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융의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자주 논의되고 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본 인물인 “그는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로렌스 반 데어 포스트)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 칼 구스타프 융, <기본 저작집>, 전9권, 2001-2008; <회상, 꿈, 그리고 사상>, 1989; <사람과 상징>, 1995; <기억, 꿈, 사상>, 2007; 이부영, <분석심리학>, 1978; 에드워드 암스트롱 베넷, <한 권으로 읽는 융>, 1997; 게르하르트 베어, <카를 융: 생애와 학문>, 1998; 이부영, <그림자>, 1999; 게르하르트 베어, <융>, 1999; 앤터니 스토, <융>, 1999; A. 새뮤얼 (외), <융 분석비평사전>, 2000; 매기 하이드 (외), <융>, 2002; 데이비드 테이시, , 2008; 디어드리 베어, <융>,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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