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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陽樓記
악양루기
范仲淹
범중엄
慶曆四年春, 滕子京謫守巴陵郡.
경력사년춘, 등자경적수파릉군.
송 인종 경력 4년(1044) 봄, 등자경이 파릉군의 태수로 쫓겨났다.
越明年, 政通人和, 百廢具興,
월명년, 정통인화, 백폐구흥,
이태 후, 정사가 통하고 백성들이 화합하여 온갖 폐지된 것들이 다시 일어났다.
乃重修岳陽樓, 增其舊制,
내중수악양류, 증기구제,
이에 악양루를 중수하여 옛 모습보다 더 크게 짓고
刻唐賢今人詩賦於其上;
각당현금인시부어기상;
당조 때의 현인들과 지금 사람들의 시부를 새기고는
屬予作文以記之.
촉여작문이기지.
내게 문장을 써 기록할 것을 부탁하였다.
予觀夫巴陵勝狀, 在洞庭一湖.
여관부파릉승상, 재동정일호.
내가 보니 파릉의 뛰어난 풍광은 동정호라는 호수 한 곳에 있다.
銜遠山, 呑長江, 浩浩蕩蕩, 橫無際涯;
함원산, 탄장강, 호호탕탕, 횡무제애;
먼 데 산을 머금고 장강을 삼켜 힘찬 기세가 끝 간 데를 모르고
朝暉夕陰, 氣象萬千;
조휘석음, 기상만천;
아침에는 햇살이 눈부시고 저녁에는 노을이 아름답고 날씨는 천변만화 조화를 부리니
此則岳陽樓之大觀也, 前人之述備矣.
차즉악양루지대관야, 전인지술비의.
이것이 악양루의 큰 구경거리인데, 옛사람들도 모두 이를 기술해두었다.
然則北通巫峽, 南極瀟湘,
연즉북통무협, 남극소상,
그런즉 북으로는 무협으로 통하고 남으로는 소수와 상강으로 이어져
遷客騷人, 多會於此, 覽物之情, 得無異乎?
천객소인, 다회어차, 남물지정, 득무이호?
이곳에 모여 경물을 둘러본 좌천된 관리들과 시인들의 심정에 다름이 없었겠는가?
若夫霪雨霏霏, 連月不開;
약부음우비비, 연월불개;
궂은비 추적추적 내리기라도 하면 몇 달 동안 개이지 않고;
陰風怒號, 濁浪排空;
음풍노호, 탁랑배공;
음산한 바람이 성난 소리로 울부짖고 흐린 물결은 크게 일어 하늘로 솟고;
日星隱耀, 山岳潛形;
일성은요, 산악잠형;
해와 별의 빛이 가려지고 산들이 그 형체를 감추며;
商旅不行, 檣傾楫摧;
상여불행, 장경즙최;
장사꾼과 나그네들이 다니지 않아 돛대가 기울고 노가 부러지며;
薄暮冥冥, 虎嘯猿啼;
박모명명, 호소원제;
황혼에 어둑어둑해지면 호랑이와 원숭이가 울어대니;
登斯樓也, 則有去國懷鄕,
등사루야, 즉유거국회향,
이런 때 누대에 오르면 도성 떠난 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憂讒畏譏, 滿目蕭然,
우참외기, 만목소연,
참소를 걱정하고 비난을 두려워하며 눈에 드는 것들마다 쓸쓸해져서
感極而悲者矣!
감극이비자의!
감회가 지극해지고 슬퍼질 것이다.
至若春和景明, 波瀾不驚,
지약춘화경명, 파란불경,
따뜻한 봄이 되면 경치가 맑고 밝고 물결도 일지 않아
上下天光, 一碧萬頃;
상하천광, 일벽만경;
위아래 하늘빛이 한결같이 푸르러 끝 모르게 드넓다.
沙鷗翔集, 錦鱗游泳,
사구상집, 금린유영,
모래밭에는 백구들 날아와 날개를 접고 비단 같은 고기들은 헤엄을 치고
岸芷汀蘭, 鬱鬱青青.
안지정란, 울울청청.
강기슭의 지초와 물가의 난초들은 향기가 짙고 무성하다.
而或長煙一空, 皓月千里,
이혹장연일공, 호월천리,
어떤 때는 긴 안개가 하늘을 채우고 어떤 때는 흰 달이 천 리를 비춘다.
浮光躍金, 靜影沉璧,
부광약금, 정영침벽,
물 위에 비친 달이 금빛처럼 일렁이고 고요한 달그림자는 옥이 잠긴 듯한데
漁歌互答, 此樂何極?
어가호답, 차락하극,
어부들 노랫소리 주고받으니 이 즐거움 어찌 다함이 있을 것인가?
登斯樓也, 則有心曠神怡,
등사루야, 즉유심광신이,
이런 때 누대에 오르면 마음이 넓어지고 정신이 즐거워져
寵辱偕忘, 把酒臨風,
총욕해망, 파주임풍,
총애와 욕됨을 모두 잊고 술잔 들고 바람을 마주해보면
其喜洋洋者矣!
기희양양자의!
그 기쁨이 다함이 없을 것이다.
嗟夫! 予嘗求古仁人之心, 或異二者之爲, 何哉?
차부! 여상구고인인지심, 혹이이자지위, 하재?
슬프다! 내가 옛 성현의 마음을 찾아봤더니 두 가지 다른 것이 있었는데 왜 그런 것인가?
不以物喜, 不以己悲,
불이물희, 불이기비,
그들은 바깥 사물로 인하여 즐거워하지 않고 자기 일로 슬퍼하지 않으며
居廟堂之高, 則憂其民;
거묘당지고, 즉우기민;
조정에 있을 때는 백성을 걱정하고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처강호지원, 즉우기군,
강호에 멀리 나가 있을 때는 군주를 걱정하니
是進亦憂, 退亦憂;
시진역우, 퇴역우;
이는 나가도 근심하고 물러나서 또한 근심하는 것이다.
然則何時而樂耶? 其必曰:
연즉하시이락야? 기필왈:
그렇다면 어느 때나 즐거워했을 것인가? 그들은 말했다.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낙이락여!」
‘천하 사람들에 앞서서 근심하고 세상 사람들 모두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하라’라고.
噫! 微斯人, 吾誰與歸!
희! 미사인, 고수여귀!
아! 이런 사람들 없었다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배우고 살아갈 것인가?
時六年九月十五日.
시육년구월십오일.
이때가 경력 6년 (1046), 9월 15일이다.
▶ 岳陽樓(악양루): 후난성湖南省 악양현岳陽縣에 있다. 등자경滕子京이 중수하고 범중엄范仲淹이 글을 짓고 소순흠蘇舜欽이 글을 쓰고 소송邵竦이 전각한 것을 사절四節이라고 부른다.
▶ 慶曆(경력): 송宋 인종仁宗의 연호(1041~1048). 경력 4년은 1044년이다.
▶ 滕子京(등자경): 이름은 종량宗諒(990~1047), 하남河南 사람이고 범중엄과 함께 진사가 되었다. 범중엄이 재상 여이간呂夷簡에게 미움을 당하여 요주지주饒州知州로 쫓겨났을 때 좌천을 자청하여 파릉군 태수로 나갔는데, 파릉군에 악양현岳陽縣이 있었다.
▶ 越明年(월명년): 내년의 다음해, 즉 후년後年.
▶ 制(제): 규모
▶ 唐賢(당현): 당조의 시인 맹호연孟浩然과 두보杜甫 두 사람을 이른다. 두 사람은 각각 악양루와 동정호를 제제로 오율五律의 명작을 남겼다.
▶ 銜遠山(함원산): 동정호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악양루를 정면으로 보고 있는 것은 군산君山이 가장 아름답다.
▶ 呑長江(탄장강): 동정호는 장강長江의 수량을 조절하는 담수호인데, 봄과 여름 장강의 물이 크게 늘어날 때는 강물이 동정호로 들어온다. 여기서는 동정호가 장강에 닿은 모양이 마치 강물을 삼키는 것 같은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 浩浩蕩蕩(호호탕탕): 수면이 넓고 수량이 많은 것을 가리킨다.
▶ 瀟湘(소상): 호남湖南의 소수瀟水와 상수湘水 두 강을 말하며 영릉현零陵縣에서 합류하여 북쪽으로 흘러 동정호로 들어간다.
▶ 遷客(천객): 좌천되어 멀리 지방으로 쫓겨난 관리를 가리킨다.
▶ 騷人(소인): 시인
▶ 霪雨(음우): 오랫동안 지루하게 내리는 비.
▶ 霏霏(비비): 비가 촘촘히 빈틈 없이 내리는 모양
▶ 檣(장): 배의 돛대
▶ 楫(즙): 배가 물에서 나아가도록 젓는 노
▶ 薄暮(박모): 황혼
▶ 去國(거국): 도성을 떠나다.
▶ 景明(경명): 풍경이 맑고 아름답다.
▶ 萬頃(만경): 지면이나 수면이 아주 너름.
▶ 錦鱗(금린): 색채가 다양한 어류
▶ 芷(지): 구릿대(식물명)
▶ 汀(정): 물가에 있는 작은 모래밭
▶ 鬱鬱(울울): 향기가 짙은 것을 말함.
▶ 青青(청청): 무성한 모양
▶ 浮光耀金(부광요금): 일렁이는 수면 위에서 흔들리는 금빛 달 그림자
▶ 靜影沉璧(정영침벽): 고요한 물 속의 하얀 달 그림자
▶ 居廟堂之高(거묘당지고): 조정에서 큰 벼슬을 지내는 것을 가리킨다.
▶ 處江湖之遠(처강호지원): 지방의 소관이나 평민을 가리킴.
▶ 微斯人(미사인): 문장 중에서 가리킨 ‘고인인古仁人’, ‘微’는 ‘없다’ 또는 ‘아니다’라는 뜻을 갖는다.
▶ 吾誰與歸(오수여귀): ‘吾與誰歸(나는 누구와 함께 돌아갈까)’의 도치형이다.
◈ 범중엄范仲淹 [989~1052]
자는 희문希文,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북송의 정치가, 문학가, 군사가로 소주蘇州 오현吳縣(지금의 쟝쑤성江蘇省 소주蘇州) 사람이다. 서주徐州에서 태어났지만 다음해(990)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모친 사씨謝氏가 산동의 치주淄州 장산현長山縣에 사는 주씨朱氏에게 개가한 뒤 주열朱說로 성과 이름을 바꾼 적도 있었다. 범중엄은 후에 장백산長白山 예천사醴泉寺에서 독서를 하면서 하루에 죽 한 대접을 끓여 식힌 뒤에 네 조각으로 나누고 아침과 저녁에 각각 두 덩어리씩만 먹었다. 범중엄은 자기 형편을 알고 나서 모친과 작별한 뒤 남경南京으로 가서 독서를 계속하여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8년(1015) 진사에 급제하였다. 1038년 서하西夏에서 이원호李元昊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한기韓琦와 공동으로 섬서경략안무초토부사陝西經略安撫招討副使가 되어 ‘둔전구수屯田久守’ 방침을 채택하고 경략사經略使 하송夏竦을 도와 반란을 평정하였다. 경력慶曆 3년(1043) 부필富弼, 한기韓琦 등과 정치개혁에 참여하여 ‘明黜陟, 均田賦, 修武備, 減徭役(등용과 퇴출을 밝게 하고 조세를 균등하게 하며 군역을 바꾸고 요역을 감하는 것)’ 등에 관한 개혁을 건의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답수조조진십사答手詔條陳十事》로 당시 소위 「경력지치慶曆之治」를 추동하며 송대 관료의 모범을 형성했다. 나중에 하송夏竦의 반대에 부딪쳐 지방관으로 내쫓긴 뒤 등주鄧州, 항주杭州, 청주青州 등을 전전하다가 황우皇祐 4년(1052) 서주徐州에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그는 문학적인 소양 또한 높아 「악양루기岳陽樓記」와 함께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같은 천고에 이름 높은 구절을 남겼고, 「어가오漁家傲」, 「소막차 蘇幕遮」 등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을 남겼다. 구양수歐陽脩는 범중엄의 「어가오漁家傲」를 ‘궁새외지사窮塞外之詞(변경을 노래한 것의 궁극)’라고 높이 평가했다. 작품집으로 《범문정공집范文正公集》을 남겼다.
▶ 이미지 출처: flickr
[출처] 범중엄 - 악양루기|작성자 들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