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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일의 대학과 책] 善과 惡은 함께 있다
    좋은 글 2013. 3. 11. 10:01

    [노동일의 대학과 책] 은 함께 있다


    김우현, 동아시아 정치질서(한울 아카데미, 2005)


    귀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우리의 국제자유도시 제주도에 동남아시아 10개국(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들이 오셨습니다. 내우외환의 어려운 시기에 찾아 주신 손님이라 더 반갑고 고맙습니다. 인간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에도 어려운 때 찾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나라가 진정한 친구 나라입니다. 국민장을 치르고,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이들 열 분 정상들의 방문은 한국인들에게 슬픔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입니다. 특히 사분오열된 우리 사회에 화합과 통합의 지침과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동남아 지역은 민족도, 종교도, 언어도 가지각색입니다. 심지어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냉전 시기에는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했고, 지금도 잘 사는 국가와 못 사는 국가의 차이가 천양지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10개국은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지역공동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공동의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공동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동남아 지역내의 협력 관계를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제주도 회합도 그 과정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신아시아 구상도 같은 맥락입니다. 수많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지역공간에서 어떻게 협력하고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 그 해법은 김우현 교수님이 저술한 국제정치학 경전, 동아시아 정치질서(한울 아카데미, 2005)에 있습니다. 김우현 교수님의 저술은 언뜻 보면, 평범한 국제정치 개론서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양한 국제정치 현상을 예로 들어 국가 간 권력 관계의 시종과 이치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탐닉하다 보면 세상을 통찰하는 정치학 고수의 혜안과 심오한 내공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역통합 비결의 가장 큰 핵심 내용은 선과 악은 함께 있다는 제38장에 있습니다. 지역통합의 당위성과 명분 수립을 위한 원리가 설명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세상살이에서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는 기준으로는 법률과 종교가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본래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이다. 원시종교에는 토템과 터부가 있다. 토템은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신앙에 따르도록 하여 사회의 응집력을 강화시키는 강제성을 가지며, 터부는 어떤 특정한 행위를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벌을 받는 금지성을 가진다. 원시사회는 토템과 터부라는 기준을 가지고 선과 악을 구별하면서 사회를 유지시켰다. 그러나 토템과 터부는 관점이 다른 기준이 아니라 그 사회를 유지하는 틀이자 선과 악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공존 관계로 존재한다.’

     

    김우현 교수님은 이러한 토템과 터부의 강제와 금지가 오늘날 법률의 기초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법률은 법을 지키는 사람과 어기는 사람의 공유물인 것이며, 이들을 조화시키는 것이 법률의 융통성이며 포용력이라고 풀어내고 있습니다. 종교에서 나의 것은 선이고 이질적인 것은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는 옳고 는 나쁘다는 것은 결국 를 타자화시켜 에게서 떼어내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주로 선악을 대립자로 구분한 흑백논리, 이분법, 획일화를 적용하여 세계를 양분시키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동양에서는 다양성의 공존, 선악의 공존을 수용하여 포용적이고 화합적인 세계를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선악의 공존 원리가 응결된 김우현 교수님의 지역통합 방책입니다. “세계화는 다원시대, 탈이데올로기시대이다. 세계화, 지역협력은 선과 악의 적대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복을 주고받는 공존 관계가 되어야 한다. 다양성의 공존에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 의 밖으로 악을 몰아내면서 무력으로 자기 확대(영토확대)를 이루던 것을 앞으로는 악(이질성)의 안으로 끌어들여 를 완성해야 한다.”

     

    노동일<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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