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페이지
전사의 방식이란
삶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라.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
23페이지
현재의 형상에만 매달리면,
우리는 다음의 형상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서
오믈렛을 만들 수 있겠는가.
파괴가 있은 다음에 창조가 있다.
33페이지
영적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여러분은 세속적인 것도 얕보지 않을 것이다.
77페이지
쇼펜하우어는 (……) 그러한 행동이 자신과 그 타인이 사실은 하나라는 진리를 본능적으로 인식한 데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타인과 별개라는 이차적인 자아의식 때문에 행동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토대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라는 더 크고 더 참된 진리를 직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생존은 삶의 두 번째 법칙이다.
첫번째 법칙은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것이다.
90페이지
따라서 내 지론은,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면 만사가 여러분에게 (자연스레)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길이고,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앞서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
100페이지-101페이지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보기에는 방랑이란 것이 매우 기이한 삶의 형태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과학적 사고방식에 의거하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미리부터 어떤 전망을 내놓게 마련이다. 하지만 방랑을 하는 동안 여러분은 일종의 신비로울 정도의 유기적인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다. 다음 번에 어디가 자라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나뭇가지는 이쪽으로 자랄 수도 있고, 그 다음 에는 저쪽으로 자랄 수도 있으며, 그러고 나서는 또 다른 쪽으로 자랄 수도 있다. 나무를 제멋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고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가하지만 않으면, 나중에 가서 여러분은 그것이 하나의 유기적 발전 과정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104페이지
무엇이 여러분을 영적 성취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가? 나는 내 삶이 언제 중심에서 멀어지는지를 잘 알고 있다. 바로 내 삶의 진정한 중심잡기로부터 나를 탈선시키는 어떤 업적이나 시스템과의 관계에 내가 과도하게 집착할 때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언제 정도를 걷고 있는지 알고 있다. 내 속에 가진 것 중에서도 최고로 여겨지는 것들과 만사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때이다.
105페이지
고귀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황무지를, 즉 "너는 할지니"의 세계를
회피하게 될 것이다.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런 느낌이 없을 경우, 여러분은 그저 삶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따라 살아가는 셈이다.
여러분이 (의례적으로) 마땅히 어떻게 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바와 정반대되는 행동이 바로 공감이다. 성배를 발견하는 사람은 그 장소에 온 사람인 동시에 공감의 삶을 사는 사람을 상징한다. 공감의 역동성을 자신의 동기로 삼는 사람만이 성배를 발견한 것이다. 이는 나와 너의 동일성에 관한 자연스러운 인식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성배의 중심이다.
106-107페이지
갤러해드 경의 이야기
기사들은 제각기 숲 속에서도 가장 신비스러운 지점으로 들어갔으며, 각자의 직감을 따랐던 것이다. 그들 각자가
불러낸 것은, 이전까지는 땅에서건 바다에서건 결코 없었던 것들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누구의 것과도 다른, 각자의 독특한 잠재력의 성취였던 것이다.
이 놀라운 이야기에서는 어떤 기사가 다른 기사의 자취를 발견하고 상대방이 이미 성배에 도달했을지 모른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하면, 그 기사는 결국 완전히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결국 모든 삶은 전체의 실현, 즉 자아의 실현이다. 때문에 그 현실을 ‘개성화’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삶은 그것을 실현하는 각각의 운반자에 매여 있으며, 운반자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운반자는 개별적인 운명과 목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것을 실현했을 때에야 비로소 삶을 이해할 수 있다.” – 융
108페이지
영혼에게 “뒤집어 씌워 날지 못하게” 하는 그물이라도 또 다른 사람, 즉 자신의 한가운데(중심)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향후의 모험을 위해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옷이 된다.
111페이지
영웅의 여정은 항상 부름으로 시작된다. 인도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아라. 너는 지금 ‘잠든 땅’에 있다. 깨어나라. 여행을 떠나라. 저곳에 너의 의식의 또한 너의 존재의 온전한 측면이 있건만, 아직 한 번도 손댄 적이 없었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그냥 머물 것이냐? 아니, 그렇게 하는 건 너에게 충분치가 않다.” 그렇게 해서 여정이 시작된다.
첫단계, 즉 해탈 혹은 물러섬의 과정은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그 중심을 옮김으로써, 황무지의 절망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영원히 평화로운 영역으로 물러섬으로써 이루어진다.
112페이지
만약 지금 여러분이 따르는 모험이 진정한 모험이라면, 또한 그것이 여러분의 깊은 영적 필요 또는 준비에 적합한 것이라면, 여러분을 돕기 위해 마법의 인도자가 나타날 것이다.
113페이지
여러분이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여러분은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며, 밤바다로 출항을 개시하는 셈이다. 그 와중에 부딪치는 바위며, 좁은 관문이며, 그와 유사한 것들, 다시 말해서 예와 아니오, 즉 대립자의 쌍을 나타내는 것들을 지나가야만 한다. 이 세계를 둘러싼 벽들이 잠시나마 확 트이는 듯한 순간이 있을 것이며, 여러분은 (그 벽을) 꿰뚫어보는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뛰어 오르라! 가라! 문들은 대개 너무나도 빨리 닫혀 버리기 때문에, 여러분이 탄 말의 꼬리를 잘라 먹기 일쑤다. 여러분은 손발이 잘릴 수도, 가진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 이것이 어머니-즉 세상-를 떠나 아버지-즉 영-에게 간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고래 배속에 들어간 요나이며, 이때 고래의 아가리는 바로 대립자의 쌍이다.
114-115페이지
여러분이 깊이 들어갈수록, 여러분은 궁극적인 깨달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저항 역시 강력해진다. 여러분은 억압된 것들로 이루어진 영역에까지 내려가게 되는데, 여러분은 그 억압 체계를 반드시 지나가야만 한다. 물론 그 무엇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마법의 도움이다. 영웅은 이곳에 이르러서 자신의 초인적인 여정내내 자신을 도와준 자비로운 힘이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첫 번째는 ‘성스런 결혼’ 즉 여러분 자신의 영적 삶을 탄생시킨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두 번째는 ‘아버지와의 화해’
아버지는 자연법칙을 상징
여러분은 자신의 본성을, 즉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찾으려 노력한다.
화해는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이고 현세적인 계획을 여러분이 떨어져 나온 삶의 방향에 맞게 조화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신격화’, 즉 “나는 만물을 있게 하는 존재다” 라는 깨달음 "
아버지의 나라는 지상에 펼쳐져 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느니라."
네 번째는 ‘불사약 빼앗기’
120페이지
융은 일생의 곡선이 딱 반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그 중 전반은 관계의 시간이며, 나머지 후반은 자기 안의 삶의 감각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121페이지
여러분은 노래하며 자신의 죽음으로 가는 것이다.
122페이지
전형적으로 중년은 달성의 기간이 아니라 깨달음의 기간이며, 또한 성취의 기간이 되어야 마땅하다. 니체가 구분한 단계에 따르면, 낙타는 짐을 잔뜩 싣고 나면 제 발로 일어나 사막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사자로 변신한다. 사자의 임무는 “너는 할지니” 라는 이름의 용을 죽이는 것이다. 이 자기발견의 사자가 용을 죽이고 나면, 용 속에 묶여 있던 모든 에너지는 이제 여러분의 것이 된다.
여러분이 만약 융이 말한 두번째 단계, 즉 삶의 후반부에 들어섰다면, 여러분의 목표는 여러분이 심장 차크라에서 들은 '옴(OM)'을 불러오는 것이고, 그러면 그것은 성취에도 관심이 없고 위신에도 관심이 없는 여러분의 삶을 형성하고 구조화하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128페이지
의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여러분에게 알려 준다.
식사 전에 드리는 감사기도는
지금 먹게 될 음식이 한때는
살아 있었던 것임을 여러분에게 일깨워 준다.
139페이지
세계의 종말 같은 파국에 관해 명상할 때의 핵심은 오고 가는, 또 오고 가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이처럼 사물이 오고 간다는 사실에 대해 편안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140페이지
만물은 오고 ...... 또 가는 것이다.
(......)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그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죽음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시애틀 추장은 이른바 우주와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를 잘 보여 주는 훌륭한 글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족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내가 왜 탄식해야 하는가? 만물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고, 백인 역시 결국 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마음 편히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 상황을 고치려는 노력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변화를 위한 노력의 근저에는 '마음 편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천장의 전구가 모두 빛의 수레이듯, 아래에 있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 의식의 수레이다. 하지만 전구에게는 빛의 질이 가장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는 의식의 질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덧없는 육체와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기 육체를 단순한 의식의 수레로 여기고, 의식을 우리 모두를 통해 현현하는 존재로 여길 수도 있다.
육신이 전구라면, 그리고 전구가 나가버린다면,
더이상은 전기가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일까?
에너지의 원천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육신을 내버리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바로 원천이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죽는 것은 반드시 태어난다.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 (…...) 모든 사람의 육체 안에 사는 절대자아는 결코 죽지 않는다. (…...) 그것은 무기로도 베지 못한다. 그것은 불로도 태우지 못한다. 그것은 물로도 적시지 못한다. 그것은 바람으로도 말리지 못한다. 영원하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자아는 영원히 한결같다. (...…) 모든 육체 안에 사는 절대자아는 죽을 수 없다. 그러니 어떤 피조물을 위해 슬퍼하지 말라.” - <바가바드 기타>
149페이지
영원한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지금, 여러분안에, 여기 있기 때문이다.
151페이지
여러분이 만약 누군가 죽어 가는 사람을 돌보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조만간 신체에서 벗어나게 될 의식과 자기 스스로를 동일시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는 일생의 온갖 것들을 벗어 버리게 된다. 마침내 우리는 스스로를 의식과 동일시하고, 우리의 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불교의
중심 사상은
집착없는 공감이다.
따라서 여러분이 공감을 느끼고 있는 누군가의 죽음을 고통으로 느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의 집착은 그 관계에 있어 일시적인 국면이다. 오히려 여러분의 공감이 바로 영원한 국면이다. 따라서 여러분은 모든 것이 상실되고 나서도 결코 상실되지 않는 어떤 것과 스스로를 동일시함으로써, 그 상실감을 상쇄시킬 수 있다. 그 상실되지 않는 어떤 것이란 바로 여러분의 몸과 모든 것을 형성하는 의식이다. 분화되지 않은 의식으로의 돌아감이야말로 귀환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이며, 여러분이 알 수 있는 최대한이다. 그 나머지는 모든 의식적 지식을 초월하는 것이다.
163페이지
그것은 어찌나 달콤한지, 우리는 그걸 선뜻 포기하려 들지 않지만, 궁극적인 포기는 바로 여러분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는 것이다.
164페이지
제7차크라에 도달한 사람은 결코 신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곳엔 오로지 분화되지 않은 의식, 즉 침묵이 있을 뿐이다. 제7차크라에 도달하면 여러분은 무감각 상태가 된다.
171페이지
계시는 우리를 보디사트바의 방법 – 즉 영원에 근거하되 시간의 장 속에서 움직이는 자의 방법 – 의 마지막 공식으로 이끌어 간다. 시간의 장은 곧 슬픔의 장이다. “모든 삶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정말 그렇다.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 여러분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손상이나 성취조차도 초월하는 장소를 발견했음을 알고 있다.
여러분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172페이지
융은 영원에 근거하되 시간의 장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174페이지
[만두키야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깨어난 의식의 상태에 있는 세계는 아움이라는 철자 가운데 아(A)와 동일시된다. 꿈의 의식 상태(즉 천국과 지옥)는 철자 가운데 우(U)와 동일시된다. 그리고 깊은 잠의 의식 상태(아는자와 아는 것간의, 하나님과 그세계간의 신비적인 합일 상태이며, 창조의 씨앗과 에너지를 배태하는상태)는 음(M)과 동일시된다.
'아'는 깨어나는 의식이다. '우'는 꿈의 의식이다. '음'은 깊고도 꿈조자 없는 잠의 영역이다.
175페이지
꿈속에서 그는 여전히 전체이며, 그의 안에 전체가 있다. 자연과 구분할 수도 없으며 모든 자아를 벗어버린 상태이다.
꿈의 비빌이란 주체와 객체가 똑같다는 것이다.
힌두교의 격언
"신은 오로지 신에 의해서만 예배될 것이니"
178페이지
융의 말을 빌리자면 "(무의식의 장에서) 사람은 더 이상 별개의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그의 정신은 넓어지고, 인류의 정신으로 융합된다.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통적인 인류의 무의식으로 융합되는 것이다."
185페이지
힌두교의 명상은 여러분에게
자연과의 합일을 도모하게 한다.
여러분이 합일하면,
그 은혜가 전부 다 나온다.
186페이지
에너지’,’의식’
나는 이 두가지 단어가 결국 똑 같은 것을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즉 하나뿐인 참뜻의 두 가지 측면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을 점점 확신하게 된다.
의식에는 분화와 운동이라는 성향도 함축적으로 들어 있으며, 나로선 문득 어쩌면 우리가 에너지라고 간주하는 것 역시 의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생물학적 영역에서 에너지는 의식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거의 동일시해도 좋을 정도까지 말이다.
187페이지
나는 이 세상에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의식의 수준이 있으며, 두뇌란 그것을 끌어들이는 (기능이) 매우 제한적인 기계에 불과하다고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시간이란 감각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 다시 말해 장차 일어날 일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 여러분은 예감이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 크나큰 중요성을 지니게 될 사람을 만날 때에는, 그 첫만남에서부터 장차 뭔가 벌어질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매우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89페이지
쇼펜하우어
"우주는 한 몽상가가 꾼 꿈이며, 그 꿈속에서 나오는 모든 사람 역시 꿈을 꾸고 있다."
202페이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버리고 취하기의 궁극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취하는 것이다."
205페이지
그렇다면 무엇이 계속해서 여러분을 동산 바깥에 있게 만드는 것읽까? 바로 여러분의 두려움과 욕망이다.
두려움과 욕망에 의해
위협을 당할 때에는
자아를 놓아 버려라
206페이지
붓다는 말한다. "그 문지기들을 두려워 하지 마라. 들어와서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
" 열매는 여러분이 자신의 영원한 생명에 관한 지식에 도달했을 때에 오는 영적 자양분의 상징이다.
211페이지
삶의 목표는
여러분의 심장의 박동을
우주의 박동에 맞추는 것이며,
여러분의 본성을 자연에 맞추는 것이다.
216페이지
내 생각에 성령에 반대하는 죄는 바로 절망이다. 성령은 여러분이 깨닫도록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며, 절망은 아무것도 나올 수 없도록 하는 느낌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지옥이다.
219페이지
영웅의 여정의 목표는
여러분 자신이다. 즉 여러분 자신을 찾는 것이다.
222페이지
여정의 목표는
여러분 자신을
의식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224페이지
여러분은 그 상징이 지칭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나면 여러분도 만족스러운 설명을 얻게 될 것이다. 상징은 원래의 용도를 회복하게 될 것이며, 여러분은 그것을 기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즉 여러분은 그것을 장애물로 여기는 대신에, 오히려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으로 여러분을 안내하는 무언가로 여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핵심이다.
그것이 바로 아래로 뾰족한 삼각형이다. 그것은 장애물이거나 아니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장일 수 있다.
230페이지
여러분이 자신의 삶에
권위자가 되었을 때,
여러분은 비로소 성숙하게 된다.
236페이지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성령에 의해 피조물에게 지속적으로 전이되는 원형이다." -융
238페이지
이세상에는 초월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있음을 알라. 그러고 나서는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단지 모든 곳에 있는 광휘를 목도하라.
262페이지 - 263페이지
성스러운 공간은 속세로부터 완전히 밀폐 봉인되어 있다. 여러분이 그런 공간 안에 들어가면, 그 밀봉된 곳으로는 아무것도 통과할 수가 없다. 여러분은 날짜나 시간이 주는 자극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받는 영원의 장소에 있게 되는 것이다. 명상을 할 때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즉 여러분 스스로를 봉인하는 것이다. 명상의 자세는 봉인하는 자세이며, 규칙적인 호흡은 여러분의 내부로 향한 탐험을 더욱 북돋운다. 이 세게는 봉인되고, 여러분은 독립적인 실체가 되는 것이다.
.. 그렇게 하는 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여러분이 장차 내적 삶을 지니려 한다면 그것은 절대 필수인 셈이다. 그것이 제공하는 바는 여러분 안에 있는 영원한 것이 시간의 장으로부터 해방되는 여유 공간이다.
… 천국 이란 바로 ‘여러분 안에’ 있는 밀폐 봉인된 공간을 말한다.
334페이지
남성의 힘이 지배하는 곳에서
여러분은 분리를 겪는다.
여성의 힘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둘이 아닌, 포용하는 특성이 존재한다.
335페이지
완전 무장한 기사가
위험한 침대를 향해 다가간다.
그 안에 누우려고 할 때마다,
침대는 펄쩍 뛰고 반항하며 움직인다.
위험한 침대는
여성의 기질을 표상한다.
만약 남성이 그냥 매달릴 수만 있고,
남성이 견딜 수만 있다면,
그 침대는 얌전해지고,
남성은 그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342페이지
이 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 모두가 사랑일때,
세상 모두는 반드시 사랑이어야 한다.
무엇도 빙해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346페이지
마야란
초월을 세계로 전환시키는
힘이다.
1. 차단하는 힘 : 사물의 실재적, 내적, 본질적인 성격을 감추거나 은폐하는 힘이다.
2. 투사하는 힘 : 환영으로서의 인상과 생각을, 그와 결합되는 욕망이나 혐오와 함꼐 방출하는 힘이다.
예를 들어 밤에는 밧줄을 뱀으로 오해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 있다.
3. 드러내 보이는 힘 : 미술과 조각 그리고 의례와 명상의 기능이며, 곧 뭔가를 알게 하는 기능이다.
349-350페이지
예를 들어서 연필, 재떨이 또는 다른 무엇이든지 여러분의 양손에 들어올린 다음, 그것을 한동안 주시해 보라.
그 용도와 이름은 잊어버리고 계속해서 주시하면서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라. "이게 무엇일까?" (......)
그 용도에서 떨어져 나오고, 그 명명에서 벗어나면, 곧 이어 경이의 차원이 열린다. 왜냐하면 그 물건의 존재에
관한 신비는 곧 우주의 존재에 대한 신비와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곧 변모의 경험이다.
마술의 드러냄(계시)은 윤리도 아니고, 판단도 아니며, 심지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인간성도 아니다. 오히려 그 드러냄은 만물을 통과해 빛나는 지고의 빛을 발하는'형상'에 대한 놀라운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어떤 상황 또는 현상이 우리 속에('의미의 확신'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 대신) '존재감'을 일으키는 경우, 우리는 이와 같은 종류의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생긴 존재감은 우리의 역량이나 준비 여부에 따라서 좁거나 깊을 수도 또는 강렬할 수도 있다.
이것이 일어나면, 우리는 우리자신의 의미 너머 실재가 꺠어남으로써(또는 이보다 더 나은 경우, 즉 '우리'가 자신의 의미 너머 실재를 향해 깨어남으로써) 우리는 생각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며 그저 내적 충격뿐인 정서를 경험하는 것이다. 우주적 지시로부터 해방된 이러한 현상은 그 원칙 - 마법에는 익히 잘 알려진, 즉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을 불러낸다는 원칙 -에 의해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킨다.
우리의 삶에 따라서 우리는 어느 한 순간 존재감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은 가치평가되지 않은, 방해받지 않은 시적 삶의 순간이다. 즉, 생각과 감정 양자 모두에 선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결코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명제에 의해 소통될 수가 없고, 단지 예술에 의해 암시되기만 할 뿐이다.
351페이지
삶의 목표는 환희다.
예술은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353페이지
제임스 조이스
심미적 대상이 세가지 순간을 만들어낸다.
integritas 전일성
consonantia 조화
claritas 빛
354페이지
불교의 의존적 기인 또는 상호적 발생(緣起)
버크민스터 풀러의 시너지
355페이지
붓다와 마하가섭 염화미소
우주를 연꽃으로 간주하고, 또한 연꽃을 파도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생명의 흔적이 물 표면에 나타난 것으로 간주하는 이런 상징에서 붓다의 교리는 이미 '의존적 기인 또는 상호적 발생'속에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꽃잎들은 어떤 식으로건 서로에 대해 개별적인 것으로, 또는 서로에 대해 우연적이거나 필연적인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 전체 체계는 붓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저 일어나는, 즉 '그렇게 오는(如來)' 것뿐이다.
356페이지
그 틀은 그 대상을 밀폐 봉인하는 경계이며, 따라서 여러분이 경험하는 모든 것. 문제가 되는 모든 것은 바로 그경계 내에 있다. 그것은 성스러운 장(場)이며, 여러분은 순수한 대상(객체)을 향한 순수한 주체가 된다. 여러분은 더 이상 이 사물들이 어떻게 이름 붙여지는지, 또는 이 사물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필요가 없다.
359페이지
이런 조화로운 리듬을 막는 두가지
하나는 욕망으로 여러분이 대상을 소유하게 만들며,
또 하나는 혐오 또는 두려움으로 여러분이 그 대상으로부터 돌아서게 만든다.
여러분이 어떤 대상을 소유하러 나아가거나 또는 그 대상으로부터 돌아서게 되면, 여러분은 마야가 투사한 미혹적인 호소와 두려움의 세상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심미적 도취 상태는 나무 아래의 부동지점애서 붓다가 경험한 바에 정확히 상응한다. 그것은 '실제로' 부동지점이다. 그것은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싼 세계의 형상들과 여러분의 관계에 있어 일종의 심리학적 정지다.
360-361페이지
거기에서는 자아의 상실과 자아의 고양이 동일하게 느껴지는 어떤 순수한 황홀의 경험이 나타난다.
이렇게 자아가 해체되면 신경망에는 오로지 생명, 어디에나 존재하는 영원한 생명만이 남게된다. 이상태를 무심(無心)의 경지라고 불렀다. 이에 해당하는 안도으ㅟ 전통적 용어에는 '해방'을 뜻하는 모크샤(moksa), '깨달음'을 뜻하는 보디, 그리고 '욕망의 바람을 초월한 경지'를 뜻하는 니르바나가 있다.
조이스는 "미적 쾌감으로 된 침묵의 밝은 정지 상태'에 대하여 말하는데, 그 상태에서는 심미적 이미지의 선명한 광휘가 파악된다. 그리고 이때 마음은 이미지의 총체성에 사로잡히고, 조화에 매혹당한다.
따라서 심미적 도구 -즉 심미적 도취를 유발하는 아름다움의 리듬의 도구-는 마야의 드러내 보이는 힘이다.
361페이지
이처럼 조이스가 말한 심미적 이론을 마야의 관념과 결합시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놀라운 깨달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여러분이 (마야의) 투사하는 힘을 경험하는지, 또는 드러내 보이는 힘을 경험하는지 여부는 여러분의 정신적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이 세계는 그 양쪽의 양상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여러분의 의식이 변화할 뿐이다.
심미적 도취는 이러한 초점의 변화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아버지의 나라는 지상에 펼쳐져 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느니라."
363페이지
정지에서 운동으로의 의식의 변화는 곧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의 타락이다. 붓다가 벗어난 구속들-욕망, 두려움 그리고 사회적 의무-은 그저 일시적인 문제들이다. 여러분은 자발적으로 거기에 속박될 수 있지만, 강제적 속박은 마야와 연관된다. 여러분이 이걸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깨달은 셈이다.
라마크리슈나
브라흐만이 바로 정점, 즉 정(靜)으로 경험되는 젖의 바다라고 말했다.
샤크티는 움직임이며, 곧 기쁨이며 고통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다. 이것이 바로 야브-염(Yab-Yum)의 관념이다.
371페이지
브리지선수에게 게임을 시작하도록 했다. 카드를 돌리고 집어 들기는 했지만, 이들은 오로지 카드를 바라보기만 했다.게임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심미적 도취, 즉 성스러운 공간의 사례였다. 카드는 심미적 환희를 위한 것 외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일찍이 세속적즐거움의 삶에 있어서 타당한 지위를 차지했던 그 대상이 갑자기 물자체(物自體), 즉 궁극적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372페이지
"우선 규칙을 배운 다음, 그 규칙을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순수한 행동 속으로 녹아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375페이지
"예술은 자연과 평행한 조화다."
376-377페이지
"나처럼 되어라! 현상의 끊임없는 변화에서 영원히 창조적이고, 영원히 실존을 강요하며, 이 현상의 변화에 영원히 만족하는 원초적 어머니인 나를!" - 니체
예술은
우리를 스스로의 얽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한 쌍의 날개다.
383페이지
글쓰기에 있어서는
일단 나오는 말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말이 나오도록 내버려 둬라.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시간 낭비는 아닐까?
하는 비판적 요소는 그냥 놓아 버려라.
384페이지-385페이지
나는 항상 나 자신이 ‘부딪치는 바위’를 지나가야 하고, 그 바위는 이제 곧 닫혀버릴 참인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나는 그런 생각에 압도되어 버리기 전에 어찌어찌 거기서 벗어나곤 했다. 이것은 매우 기이한 과정이다. 말 그대로 문을 계속 붙잡아 열어 두고 문장들이 쏟아져 나오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부정적인 것들이야 계속해서 나타나겠지만, 여러분이 일찍이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하려면 그 문을 계속 열어 두어야 한다. 여러분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비판을 미루어 두어야 한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문장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항상 이런 일을 해야 한다. 비판을 미루어두는 것은 이른바 ‘너는 할지니’ 라는 용을 죽이는 것이다. 그 놈을 죽여 버려라.
385페이지
우선 글을 쓰도록 하라.
비평가는 잊고 그저 쓰기만 하라.
비판적 요소를 끌어안고 문장을 다듬는 것은
그 다음에도 충분히 할수있으니까
390페이지
영적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여러분은 세속적인 것도 얕보지 못할 것이다.
399페이지
성스러운 공간이란다시 말해 사물이 드어떤 실용적 용도도 지니지 못하는 것으로 경험되는 곳이다.
401페이지
여러분 스스로가 곧 마야를 만들어내는 존재이며, 여러분의 태도가 붓다의 태도일 때 여러분은 그 드러내 보이는 힘을 여는 사람인 것이다.
411페이지
겉으로는 따로따로인 듯
보이는 사물들도
근본적으로는 하나에 불과하다.
에어빈 슈뢰딩거
" 우리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서로에게 속해 있다."
" 이는 우리 모두가 사실은 어느 하나의 단일한 존재의 측면 또는 양상인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 단일한 존재를 서구의 용어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반면,[우파니샤드]에서는 브라흐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립자의 세계너머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경험되는
통일성과 동질성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우리 존재의 입자 하나하나까지도-의식의 투하이기 때문이다. 마치 동물과 식물, 그리고 자석에 붙는 금속과 달의 인력에 끌려가는 물이 그렇듯이 말이다.
413페이지
우리는 이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
419페이지
영(靈)은 자연의 꽃다발이다.
425페이지
거대한 풍파 속에서도
신과 같은 침착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마치 디오니소스가 표범에 올라타고도
갈가리 찢기지 않는 것처럼
426페이지
"삶의 길을 가다보면
커다란 구렁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 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넓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