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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멸하는 중생심이 그대로 진여심이다”대승기신론 강해가 밝히는 대승의 대의
    좋은 글 2021. 8. 24. 11:32

    출처 : http://www.bulgyonews.co.kr/news/27238

     

    생멸하는 중생심이 그대로 진여심이다

    대승기신론 강해가 밝히는 대승의 대의

     

    한자경(이화여자 대학교 교수)

     

     

     

    대승기신론은 진여 일심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 쓰여진 논서이다.

     

     

    불교는 일체 존재를 법이라 하고, 이 법의 근원을 법 자체라는 의미에서 법체라고 한다. 법체는 곧 우주의 근원 내지 우주적 진리 자체이다. 불교에서는 이 법체를 법의 몸이란 의미에서 법신이라고 부른다.

     

     

    법신이라 부르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기신론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진여 일심에 대한 믿음을 갖는 다는 의미는 생멸하는 중생심이 바로 진여요 법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체 중생심 안의 불생불멸의 진여심, 여래법신이다.

     

     

    결국 중생은 불생불멸의 진여심과 인연따라 생멸하는 생멸심의 양면을 가진다. 기신론의 일심이문은 이것을 말한다. 일심이 나누어져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되는데 진여문은 불생불멸의 진여자체를 논하고, 생멸문은 불생불멸의 진여와 생멸하는 현상의 관계를 논한다.

     

     

    한자경 교수

     

    대승기신론의 구조

     

     

    대승기신론 전체를 볼 때 크게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서분은 불법승 삼보에 예배드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저자의 발원을 싣고 있다.

    본론인 정종분은 인연분, 입의분, 해석분으로 나뉘어 있다.

     

     

    먼저 인연분은 기신론을 짓게된 인연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둘째 입의분에서는 기신론이 세우고 있는 논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세우고, 셋째 해석분에서는 기신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해설하고 있다. 넷째 수행신심분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말하고, 다섯째 권수이익분은 수행의 이익을 들어 실천을 권장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기신론의 핵심은 그 사상을 해설하고 있는 해석분이 중심부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해석분이 대승기신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해석분은 또 현시정의, 대치사집, 분별발취도상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현시정의가 내용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유통분은 이글을 쓴 공덕을 회향하여,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발원을 담고 있다.

     

     

     

    기신론의 본론 정종분

     

     

    먼저 인연분에서 말하는 기신론 저술의 동기는 중생이 일체의 고통을 여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부처님 당시에는 법을 설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가 근기가 수승하여 모두 평등하게 가르침을 이해했으나,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자력으로 이해하는 사람과 자력이 부족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에 자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이 기신론을 지었다는 것이다.

     

    둘째 입의문에서는 가르침의 대의를 말하고 있는데 그 대강으로 일심이문, 삼대를 제시하고 있다. 일심이문은 중생심이 곧 대승으로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나뉘며, 중생의 진여상이 대승의 체에 해당하고, 생멸상이 대승의 용에 해당하며, 진여상과 생멸상이 서로 상대해 있는 것이 대승의 상에 해당한다.

     

     

     

    해석분에서의 현시정의

     

     

    정종분의 셋째가 해석분인데 그 첫째가 현시정의이다. 현시정의는 기신론의 정의를 밝힌다는 뜻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서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을 해석하고 있으며, 진여와 여래장, 각과 불각, 본각과 시각, 삼세, 육추 훈습설과 그밖의 중요한 교리를 논술하고 있다.

     

     

    기신론은 여래장사상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중생이 다 진여라는 가르침이다. 중생은 모두 진여심, 여래장,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부처님은 무아를 가르치셨다. 중생심 안에 진여심이 있고 법신이 있다고 대승에서 주장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생심엔 진여문과 생멸문 존재

    중생의 진여상이 대승의 체

    생멸상은 대승의 용에 해당

     

     

    중생이 가지고 있다는 진여 법신이 무명 중생의 무아와 융합할수 없다는 이유로 대승을 불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대승비불설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논리가 필요하다. 무아와 어떻게 상통할까 하는 것이다.

     

     

    대승에서는 무아를 말할 때 자아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은 아가 항상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함이다. 그러나 항상 언제든지 내가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내가 있다는 주장은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존재하는 자아는 있을 수 없다. 이처럼 항상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는 무상한 것이고, 무상한 것은 아가 없는 것이고, 공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아라는 것은 오온의 화합물에 지나지 않는다. 화합물은 항상하는 것도 아니고 단일한 것도 아니어서 아공이 된다. 초기불교의 무아사상은 아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파불교가 되면서 설일체유부가 나타나 일체는 있다고 주장한다. 설일체유부는 이름대로 일체가 있다고 설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색수상행식 오온은 서로 화합하여 물체를 만들기 때문에 공이라 할 수 있지만 화합을 이루는 요소들은 공이 아니고 유라고 주장한다. 비유하면 레고로 집을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 집을 헐고 자동차를 부수면 물체가 없어지니 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집을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었던 레고 조각 하나하나는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근본은 그대로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아는 공하지만 법은 유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실재하는 것이 바로 공이라고 주장한다. 즉 법공이다. 대승에서 말하는 무아는 화합된 자아는 없고, 요소는 있다는 말이 아니다. 요즘의 과학적 사고로 생각할 때 부파불교의 사고는 현대적 사고와 매우 유사하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불교는 사물의 본질 속에도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사물을 이루고 있는 근본 요소 안에도 핵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물질을 쪼개고 쪼개다 보면 핵도 없어지고 물질도 없어지는 쿼크라는 물질이 된다는 것이다. 쿼크는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볼 때 물질은 모두가 공이며 법공이라 할 수 있다.

     

     

    물질의 기본적인 요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요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하는 것이 유식의 주장이다. 유식에서는 설일체유부에서 생각하는 것을 공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드러난 현상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거짓으로 존재하는 가유라고 말한다. 아뢰야식이 전변해서 현상세계를 형성하고, 현상세계는 가유로 존재하는 것이다. 유식에서는 전변하는 식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냈다.

     

     

    5식은 안이비설신의 5근과 색성향미촉의 5경으로 나타나고, 6식은 의식이 법경으로 나타는 대상의식이다. 7 말라식은 자의식이며, 8아뢰야식은 심층식이다. 내가 표층의식에서 자아와 법계로 인식하는 일체는 모두 나의 심층 아뢰야식이 만들어낸 영상(가유)라는 것이다.

     

     

    빛이 만들어낸 홀로그램처럼, 우주는 그렇게 나의 심층 아뢰야식이 허공에 투사해 놓은 시공간적 영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유식의 핵심이다.

     

     

    아뢰야식의 종자들이 현실로 드러나면 이는 심층에너지의 발로이며, 하나의 마음이다. 이것이 일심이고 진여심이다. 즉 상을 그려내는 바탕은 하나이니 이것이 진여심에 해당한다.

     

     

    그러면 유식과 여래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본질적으로 차이는 없지만 아뢰야식에 내장된 업력으로 인해 투영되기 때문에 아뢰야식이 망식이 아니냐고 볼수 있는데 여래장은 아뢰야식 그대로가 진여심이요, 자성청정심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승기신론은 중생심이 바로 진여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승에서 말하길 모든 중생은 다부처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부처임을 아는것과

    부처임을 모르는 것의 차이일 뿐이다

     

     

    대승기신론은 일심이문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일심에 의하여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 있다는 것이다. 불생불멸하는 실체가 있고, 생멸하는 일체제법이 생하고 멸하게 된다. 이것을 모두 포섭해서 나타나는 것이 심생멸문이다.

     

     

    비유하면 그림을 그린 도화지에 사물이 그려져 있으면 이것이 생멸하는 현상이고, 도화지 그 자체는 불생불멸하는 나의 마음이다. 그림과 도화지는 불일불이이다. 불일은 단견을 부정하는 것이고 불이는 상견을 부정하는 것이다.

     

     

     

    심생멸문의 본각, 불각, 시각

     

     

    본각이란 생멸하는 중생심을 보며 그것이 자기임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청정한 마음이 바로 중생심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반면 불각은 자기의 중생심을 보며 생멸만을 보고 자신이 본래 청정한 마음이라는 본각을 가졌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시각은 생멸하는 마음이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차츰 청정한 마음이 본래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이고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불각이 시각으로 바뀌는 것이며 시각이 바로 본각이다.

     

     

    대승에서 말하기를 모든 중생은 다 부처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아는 것과 부처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 뿐이다. 자신에게 본각이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 시각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음을 일으키고 단계별로 수행을 해야만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다. 대승에서 중생이 곧 부처이고, 중샘심이 진여심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대승기신론의 가르침은 근기가 일천한 중생들을 향한 구원의 손길이 아닐 수 없다. 정리=한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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