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열광케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 신드롬, 관객수 1500만 명을 훌쩍 넘긴 충무공 열풍. 전문가들은 “소통 단절과 리더십 부재에 허우적대는 한국 정치에 대한 경고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치 불신과 새로운 리더십 출현에 대한 갈증이 장외(場外) 수퍼스타에게 눈 돌리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땐 ‘안철수 바람’이 불었다. 상당 기간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달렸던 그다. 하지만 막상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안 의원의 인기는 급락하고 있다.
왜 그럴까. ‘안철수의 멘토’로 불렸던 윤여준 전 의원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대답은 명료했다. “정치 지도자는 길러지는 것이지 외부에서 휙 날아오는 게 아니더라.” 그는 “민중 속에서 수업 받고 성장해야만 좋은 지도자가 된다. 아무리 조급해도 금방은 안 된다”며 “정치에 압축성장의 지름길은 없다”고 말했다. 지도자를 길러내고 학습시키는 운동장 격인 정치권이 의회민주주의가 잘 작동되도록 체질을 바꾸는 게 급선무란 얘기다.
윤 전 의원은 신당 창당 작업을 진두지휘하다 지난 3월 안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그와 결별했다. 이후 언론 인터뷰 등 대외 활동을 자제해 왔다. “자숙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5개월여 만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중앙일보사 7층 유민라운지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영화 ‘명량’의 기세가 대단하다. 충무공에 열광하는 이유를 뭐라고 보나.
“국민들이 그런 리더십에 목마른 거다. 본분에 충실한, 희생적인 리더십을 본 적이 없으니 갈망하고 빨려 들어가는 거 같다. 그러나 충무공이 보여준 조선조 무인으로서의 영웅적인 모습과 오늘날 민주사회의 국가리더십을 혼동해선 안 된다.”
-민주적 국가리더십이란 뭔가.
“국가를 통치하는 능력(statecraft·통치술)은 여섯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본다. 국가 미래를 그리는 비전제시 능력, 비전을 구현하는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능력, 제도를 만들고 바꾸는 능력, 인사, 외교 능력, 여기에 우리 대통령에겐 한반도 평화를 구현하는 능력이 추가로 요구된다. 이론적인 지식에다 경험을 통한 실천적 지식이 결합된 사람이라야 한다. 이게 쉽겠나. 그래서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게 어렵다. 리더는 외부에서 휙 날아오는 게 아니라 정당 안에서 젊어서부터 학습되고 길러져야 한다.”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우선 대통령이 의회를 존중해 줘야 한다. 지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하고 나서 집권당을 무력화시켰다. 권위주의에 맞서 싸웠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집권하고 나선 권위주의 방식으로 통치했다. 역설이다. 그들 스스로 민주적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기가 권력을 나누면 내 권력이 약해질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데 사실 그 반대다. 대통령은 권력을 나눌수록 권위가 커진다.”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얘긴가.
“정당들도 문제다. 여당은 대통령에게 의지하려고만 하고 야당은 ‘전부 아니면 전무’ 투쟁만 한다. 특히 여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당은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의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 있는 집권당으로서의 역할, 이 두 가지가 있다. 그런데 집권여당 역할만 중시하니까 국민에게 신뢰를 잃는다. 이게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대통령은 소통의 가장 큰 창구가 집권당이 돼야 한다. 당의 조직을 통해 대통령의 생각을 전파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게 소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정치권에 소통을 주문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민주적 리더십을 실감하기 어려웠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과 행동으로 본을 보여줬다. 낮은 자세로 자신을 낮추고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언어로 일체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민주적 리더십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나.
“도덕적 권위를 어떻게 얻을지 공부해야 한다. 권력은 제도로 주어진 힘이니까 일방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권위는 상대가 인정할 때만 생긴다. 대통령의 권위도 국민이 인정할 때 생긴다. 교황은 겸손했지만 권위는 대단했다. 지도자가 권위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교황이 좋은 본을 보여줬다.”
-한국 정치의 현실은 갑갑하다. 세월호특별법 처리를 놓고 여야가 협상에 재협상을 거쳤는데도 유족들에 의해 거부돼 교착상태에 빠졌다. 의회민주주의 실종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의 의회민주주의 수준이 얼마나 미숙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국회라는 게 각각 지지세력을 가진 정당들이 모여서 갈등을 해서, 그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이게 안 되면 결국 다수결에 따라 정하게 돼 있다. 국회에서 정해지면 일반의사가 된다. 이런 기본적인 타협과 절충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의회민주주의는 할 수 없게 된다.”
-정치인들의 미숙함 때문인가.
“근본적으론 불신 때문이다. 유족이 정부를 안 믿는다. 큰 사건 날 때마다 새누리당이 필사적으로 진상규명 안 하려고 하는 걸 국민들이 다 봤다. 세월호 침몰 때도 국가가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고 수습 과정에서도 대통령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강조했지만 그렇게 진상규명에 애쓰는 모습을 안 보이니까 분노하고 불신하는 것이다. 이래선 끝없는 평행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수습의 과정은 의회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서 해야 한다. 유족들도 대국적인 견지에서 조금은 양보, 포용하는 생각을 해주면 좋겠다.”
-새정치에 대한 갈망이 ‘안철수 현상’을 낳았다. 하지만 이후 안 의원이 보인 모습에 실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국민들이 얼마나 변화에 목이 말랐으면 안철수라는 개인 이름에 ‘현상’이란 말이 붙었겠나. 회오리 바람처럼 열망이 일어났다. 이걸 받아서 안 의원이 정치를 바꾸겠다고 한 건 충정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대선 과정을 보니 생각보단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았다. 정치를 안 하던 사람이니 도와주는 조직도 없고 시간은 촉박하니까 (중도 사퇴했다고) 이해를 했다. 금년에 새정치를 시작하면서 내게 도와달라고 했다. 대선 때 부족함을 느꼈을 테니 보완하고 각오도 단단히 하고 다시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서 보니 생각보다 준비가 잘 안 돼 있었다.”
-신당 만들겠다고 하다가 느닷없이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했다. 왜 그런 판단을 했다고 보나.
“저도 안 의원에게 왜 그렇게 결심했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본인이 한 말을 들어보면 새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민주당이라는 그릇이 크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민주당을 자기 생각대로 바꿀 수 있고, 새정치를 구현하는 중심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간 거다. 아주 순진한 판단인데, 민주당에 대해 잘 모르고, 정치 작동 메커니즘도 잘 모르니까 설득을 액면 그대로 믿고 간 것 같다.”
-안 의원을 두 번 도왔고 두 번 떠났다.
“벌어질 일이 뻔히 보였다. 안 의원이 민주당에 가서 뭘 하겠다고 내게 얘기한 게 있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봤다. 같이 갈 수가 없었다. 그건 새정치 구현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 의원이 ‘안철수 현상’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보나.
“재도전 의지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국민적 열망을 절망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훨씬 어려워졌다.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내가 왜 정치를 하려고 했는지 원점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게 목적이냐 한국 정치를 바꾸는 게 목적이냐. 본인이 따져보라는 거다. 나한테 와달라고 할 때는 새정치가 목적이고 대통령은 수단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행태를 보면서 수단과 목적을 뒤바꾼 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본인이 진지하게 물어보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게 될 거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국민 앞에 다른 모습으로 서면 국민이 한 번은 더 기회를 주지 않겠나.”
글=이정민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S BOX] 경무대서 유년시절 … “이승만 대통령, 관저 데려가 바나나도 줬죠”
윤여준 전 의원은 유년기의 한때를 경무대(청와대의 이전 명칭) 경내에서 보냈다. 이승만 정부에서 총무처 차관을 지낸 선친(윤석오·1981년 타계)을 각별히 아낀 이 전 대통령이 경무대 경내에 작은 사택을 내줬다고 한다. 윤 전 의원은 “마당에서 놀다 산책 나온 이승만 대통령의 손에 이끌려 관저에 들어가 바나나와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한테 크게 꾸중을 들었다”고 기억했다.
정치와의 인연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이어졌다. 경향신문 기자를 그만두고 38세 때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정부에서 공보수석·환경부 장관 등 요직을 거쳤다. 직접 정치(15, 16대 의원)를 한 적도 있다. 한나라당 시절 이회창 전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필했고 이명박 정권 탄생에도 역할을 했다. 지난 대선 땐 문재인 의원을, 대선 후엔 안철수 의원을 도왔다.
‘책사’ ‘멘토’로 불리는 윤 전 장관에게 정치의 묘수(妙手)에 대해 물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
“묘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할 순 있지만 그 묘수가 또 하나의 모순을 잉태해서 더 큰 덩어리의 모순이 온다. 특히 국가 운영은 원칙과 정도를 찾아야 한다. 판단 착오를 했다, 잘못했다고 하면 국민은 용서해준다. 하지만 합리화하고 잘못된 걸 속이면 국민이 금방 알게 되고 불신만 산다. 정치엔 묘수가 없다.”
왜 그럴까. ‘안철수의 멘토’로 불렸던 윤여준 전 의원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대답은 명료했다. “정치 지도자는 길러지는 것이지 외부에서 휙 날아오는 게 아니더라.” 그는 “민중 속에서 수업 받고 성장해야만 좋은 지도자가 된다. 아무리 조급해도 금방은 안 된다”며 “정치에 압축성장의 지름길은 없다”고 말했다. 지도자를 길러내고 학습시키는 운동장 격인 정치권이 의회민주주의가 잘 작동되도록 체질을 바꾸는 게 급선무란 얘기다.
윤 전 의원은 신당 창당 작업을 진두지휘하다 지난 3월 안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그와 결별했다. 이후 언론 인터뷰 등 대외 활동을 자제해 왔다. “자숙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5개월여 만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중앙일보사 7층 유민라운지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윤여준 전 의원은 “정치 실패가 세월호 참사를 불러왔다. 해경 해체 같은 기능적 대책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영화 ‘명량’의 기세가 대단하다. 충무공에 열광하는 이유를 뭐라고 보나.
“국민들이 그런 리더십에 목마른 거다. 본분에 충실한, 희생적인 리더십을 본 적이 없으니 갈망하고 빨려 들어가는 거 같다. 그러나 충무공이 보여준 조선조 무인으로서의 영웅적인 모습과 오늘날 민주사회의 국가리더십을 혼동해선 안 된다.”
-민주적 국가리더십이란 뭔가.
“국가를 통치하는 능력(statecraft·통치술)은 여섯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본다. 국가 미래를 그리는 비전제시 능력, 비전을 구현하는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능력, 제도를 만들고 바꾸는 능력, 인사, 외교 능력, 여기에 우리 대통령에겐 한반도 평화를 구현하는 능력이 추가로 요구된다. 이론적인 지식에다 경험을 통한 실천적 지식이 결합된 사람이라야 한다. 이게 쉽겠나. 그래서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게 어렵다. 리더는 외부에서 휙 날아오는 게 아니라 정당 안에서 젊어서부터 학습되고 길러져야 한다.”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우선 대통령이 의회를 존중해 줘야 한다. 지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하고 나서 집권당을 무력화시켰다. 권위주의에 맞서 싸웠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집권하고 나선 권위주의 방식으로 통치했다. 역설이다. 그들 스스로 민주적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기가 권력을 나누면 내 권력이 약해질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데 사실 그 반대다. 대통령은 권력을 나눌수록 권위가 커진다.”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얘긴가.
“정당들도 문제다. 여당은 대통령에게 의지하려고만 하고 야당은 ‘전부 아니면 전무’ 투쟁만 한다. 특히 여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당은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의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 있는 집권당으로서의 역할, 이 두 가지가 있다. 그런데 집권여당 역할만 중시하니까 국민에게 신뢰를 잃는다. 이게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대통령은 소통의 가장 큰 창구가 집권당이 돼야 한다. 당의 조직을 통해 대통령의 생각을 전파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게 소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정치권에 소통을 주문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민주적 리더십을 실감하기 어려웠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과 행동으로 본을 보여줬다. 낮은 자세로 자신을 낮추고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언어로 일체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민주적 리더십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나.
“도덕적 권위를 어떻게 얻을지 공부해야 한다. 권력은 제도로 주어진 힘이니까 일방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권위는 상대가 인정할 때만 생긴다. 대통령의 권위도 국민이 인정할 때 생긴다. 교황은 겸손했지만 권위는 대단했다. 지도자가 권위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교황이 좋은 본을 보여줬다.”
-한국 정치의 현실은 갑갑하다. 세월호특별법 처리를 놓고 여야가 협상에 재협상을 거쳤는데도 유족들에 의해 거부돼 교착상태에 빠졌다. 의회민주주의 실종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의 의회민주주의 수준이 얼마나 미숙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국회라는 게 각각 지지세력을 가진 정당들이 모여서 갈등을 해서, 그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이게 안 되면 결국 다수결에 따라 정하게 돼 있다. 국회에서 정해지면 일반의사가 된다. 이런 기본적인 타협과 절충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의회민주주의는 할 수 없게 된다.”
-정치인들의 미숙함 때문인가.
“근본적으론 불신 때문이다. 유족이 정부를 안 믿는다. 큰 사건 날 때마다 새누리당이 필사적으로 진상규명 안 하려고 하는 걸 국민들이 다 봤다. 세월호 침몰 때도 국가가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고 수습 과정에서도 대통령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강조했지만 그렇게 진상규명에 애쓰는 모습을 안 보이니까 분노하고 불신하는 것이다. 이래선 끝없는 평행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수습의 과정은 의회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서 해야 한다. 유족들도 대국적인 견지에서 조금은 양보, 포용하는 생각을 해주면 좋겠다.”
-새정치에 대한 갈망이 ‘안철수 현상’을 낳았다. 하지만 이후 안 의원이 보인 모습에 실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국민들이 얼마나 변화에 목이 말랐으면 안철수라는 개인 이름에 ‘현상’이란 말이 붙었겠나. 회오리 바람처럼 열망이 일어났다. 이걸 받아서 안 의원이 정치를 바꾸겠다고 한 건 충정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대선 과정을 보니 생각보단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았다. 정치를 안 하던 사람이니 도와주는 조직도 없고 시간은 촉박하니까 (중도 사퇴했다고) 이해를 했다. 금년에 새정치를 시작하면서 내게 도와달라고 했다. 대선 때 부족함을 느꼈을 테니 보완하고 각오도 단단히 하고 다시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서 보니 생각보다 준비가 잘 안 돼 있었다.”
-신당 만들겠다고 하다가 느닷없이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했다. 왜 그런 판단을 했다고 보나.
“저도 안 의원에게 왜 그렇게 결심했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본인이 한 말을 들어보면 새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민주당이라는 그릇이 크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민주당을 자기 생각대로 바꿀 수 있고, 새정치를 구현하는 중심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간 거다. 아주 순진한 판단인데, 민주당에 대해 잘 모르고, 정치 작동 메커니즘도 잘 모르니까 설득을 액면 그대로 믿고 간 것 같다.”
-안 의원을 두 번 도왔고 두 번 떠났다.
“벌어질 일이 뻔히 보였다. 안 의원이 민주당에 가서 뭘 하겠다고 내게 얘기한 게 있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봤다. 같이 갈 수가 없었다. 그건 새정치 구현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 의원이 ‘안철수 현상’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보나.
“재도전 의지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국민적 열망을 절망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훨씬 어려워졌다.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내가 왜 정치를 하려고 했는지 원점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게 목적이냐 한국 정치를 바꾸는 게 목적이냐. 본인이 따져보라는 거다. 나한테 와달라고 할 때는 새정치가 목적이고 대통령은 수단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행태를 보면서 수단과 목적을 뒤바꾼 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본인이 진지하게 물어보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게 될 거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국민 앞에 다른 모습으로 서면 국민이 한 번은 더 기회를 주지 않겠나.”
글=이정민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S BOX] 경무대서 유년시절 … “이승만 대통령, 관저 데려가 바나나도 줬죠”
윤여준 전 의원은 유년기의 한때를 경무대(청와대의 이전 명칭) 경내에서 보냈다. 이승만 정부에서 총무처 차관을 지낸 선친(윤석오·1981년 타계)을 각별히 아낀 이 전 대통령이 경무대 경내에 작은 사택을 내줬다고 한다. 윤 전 의원은 “마당에서 놀다 산책 나온 이승만 대통령의 손에 이끌려 관저에 들어가 바나나와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한테 크게 꾸중을 들었다”고 기억했다.
정치와의 인연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이어졌다. 경향신문 기자를 그만두고 38세 때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정부에서 공보수석·환경부 장관 등 요직을 거쳤다. 직접 정치(15, 16대 의원)를 한 적도 있다. 한나라당 시절 이회창 전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필했고 이명박 정권 탄생에도 역할을 했다. 지난 대선 땐 문재인 의원을, 대선 후엔 안철수 의원을 도왔다.
‘책사’ ‘멘토’로 불리는 윤 전 장관에게 정치의 묘수(妙手)에 대해 물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
“묘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할 순 있지만 그 묘수가 또 하나의 모순을 잉태해서 더 큰 덩어리의 모순이 온다. 특히 국가 운영은 원칙과 정도를 찾아야 한다. 판단 착오를 했다, 잘못했다고 하면 국민은 용서해준다. 하지만 합리화하고 잘못된 걸 속이면 국민이 금방 알게 되고 불신만 산다. 정치엔 묘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