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88&contents_id=4901
자크 라캉
[ Jacques Lacan ]- 프랑스의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는 이론을 정립하여 ‘프로이트의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 출생-사망
1901. 4. 13 ~ 1981. 9. 9
- 국적
프랑스
- 활동분야
철학, 정신분석학
- 출생지
프랑스 파리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하였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처음에는 철학을 배웠으나 후에 의학 ·정신병리학을 배웠다. 1932년 프로이트의 지도를 받았으며 《개성에 비추어본 망상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평생을 정신과의사 및 정신분석학자로 지냈다.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탈퇴하여 1953년 프랑스정신분석학회를 창설하였다. 1966년 논집 《에크리 Ecrits》의 간행으로 갑자기 유명해졌으며, M.푸코 등과 함께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라캉은 말년까지 무려 4백만 명이 넘는 환자를 상담하고, 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는 이론을 정립하여 ‘프로이트의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인간의 욕망, 또는 무의식이 말을 통해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는 것이다. 말이란 틀 속에 억눌린 인간의 내면세계를 해부한다고 하여 정신분석학계는 물론 언어학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이것은 환자를 치료하는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철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그의 가장 큰 업적이 되었다. 그의 사후 E.루디네스코가 쓴 《자크 라캉:삶의 개요, 철학체계의 역사》(파야르 간행)가 방대한 분량(700면)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라캉의 학문적인 업적은 인정하나 그의 거칠고 차가운 성격에다 여성편력이 심했으며 말년에는 자신의 이론에 집착하여 독선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하였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그를 ‘프랑스 인텔리겐치아의 마지막 거장’이라고 평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과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을 떠나서 철학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현대 프랑스 철학이 안고 있는 특징이다. 근대서양철학은 '주체'의 발견을 통해 가능하였다. 감각경험을 통해서건 또는 사유를 통해서건 세계가 우리에게 의미있게 읽혀질 수 있는 것은 경험하고 사유하는 주체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존재'는 의식을 통해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이와 같은 사고의 변화는 근대서양인들에게 스스로 지니고 있는 자유를 의식하게 했고, 이 자유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각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 실현해야 할 자유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19세기의 낭만주의, 포이에르바하의 유기론(有機論), 니체의 철학을 통해 발전된 이성비판 혹은 주체비판은 20세기의 학문으로 출현한 정신분석학, 구조언어학 등과 결합하여 근대적 주체(이성, 의식)중심적 사고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주체는 존재의 근원 또는 기원이 아니라 오히려 무의식과 언어를 통해 형성된 결과물임을 주장하게 되었다.
라캉(J.Lacan ; 1901~1981)의 사상은 Ecrits 속에 집약되어 있고 누구 못지 않게 헤겔과 하이데거 등의 철학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의 작업은 프로이트로 되돌아가 프로이트가 발견한 내용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집중되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정신의학, 사회학, 발달 심리학, 문화 인류학 등에 수용되면서 본래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변형ㆍ왜곡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라캉도 그 창시자인 프로이트의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였다. 그는 정신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은 말뿐이므로 그 이론을 더 세련되게 발전키기에는 언어학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라캉이 언어학을 모형으로 정신분석학을 한 걸음 더 발전시키고 그렇게하므로써 프로이트의 진의를 더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 까닭은 정신분석이 단지 말을 통한 치유법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은 곧 타자의 언술이고 동시에 '언어처럼 짜여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캉은 발화 행위가 어떤 보편적 법칙에 선험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언어학에 관심을 가졌고, 언어학을 수단으로 언어와 무의식의 관계를 해명해 보려고 하였다. 무의식을 해명하기 위하여 라캉이 언어학을 적용한 것은 시니피앙(signifiant)과 시니피에(signifié)에 관한 그의 이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물론 용어 자체는 소쉬르의 것이지만 라캉이 다룬 문제는 프로이트의 문제였다. 라캉은 언어학의 소비자에 그치기 보다 임상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언어학에 깔린 형이상학적 전제를 폭로하고, 특히 시니피앙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언어학의 '실재론'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라캉은 '언어적 전회'를 통해 무의식의 구조가 언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욕망을 읽어낸다. 이와 같은 라캉의 작업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짜여져 있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두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다음에 라캉이 무의식과 언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살펴보고, 이것을 바탕으로 인간 주체의 발생과정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와 같은 구조로 짜여 있다고 보아, 무의식을 해명하는 일에 언어적 모형을 적용하였다. 라캉의 이런 작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한편으로 라캉은 프로이트를 언어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프로이트 사상에 담겨 있던 상징론을 발굴해 낼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라캉도 대체로 소쉬르와 야콥슨의 언어이론에서 출발했지만 정신분석이론과 임상경험을 통해 이들의 실재론적 또는 본질주의적 언어이론에 중요한 수정을 가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무의식은 표상적 의식으로 포착될 수 없는 '무의식적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고 무의식적 생각은 원천적으로 감추어져 있다. 무의식적 생각은 개인의 심리상태에 줄곧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변형된 모습으로 바깥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의식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신체부위의 고통(신체 언어)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꿈의 경우와 같이 해독할 수 없는 표상(그림 언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무의식적 생각의 표출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언어규칙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의 표출인 증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무의식적 생각이 자유로운 낱말 연상을 통해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증상을 통해 표현된 것은 말로 옮겨질 수 있어야 한다. 증상에 담긴 의미는 개개인의 내면세계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그것은 언어로 옮겨질 때 보편성을 띠게 된다.
무의식이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언어는 그 고정된 형식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가 지닌 보편적 형식 때문에 무의식은 이때 가능한 것으로 조정되어 표현된다. 만일 고정된 언어형식을 빌리지 않으면 무의식은 생각의 덤불에 지나지 않고, 따라서 그것은 이해될 수 없는 무규정성에 지나지 않게 된다. 바로 여기에 프로이트와 라캉의 차이가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언어와 같은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언어는 무의식의 본질이 아니라 다만 무의식을 독해 가능한(그것도 상당히 왜곡된) 텍스트로 만들어 줄 뿐이다. 프로이트 자신도 자유로운 낱말 연상작용은 여러가지 면에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언어사용과 흡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 무의식이 언어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라캉은 언어의 고정된 법칙성과 무의식으로부터의 의미규정이 모든 의미현상과 동시적으로 출현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한다.
라캉은 무의식의 진상과 그것의 현현방식을 도식적으로 그리기 위해 소쉬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사용했다. 이것은 무의식이 의식에 떠오르는 단계에 대한 프로이트의 삼분법에 근거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삼분법은 첫째, 구체적인 표상을 통해 완전히 재현할 수 없는 무의식적 사고내용, 둘째 무의식이 표면화된 증상, 셋째, 증상을 출발점으로 무의식을 언어화하는 언어표상, 이 세 가지 구분을 말한다.
라캉은 의미표현을 통해서 드러나지 않는 그 자체로 계속 감추어진 무의식적 사고내용을 '시니피에'라 부르고, 무의식이 일정한 꼴로 표현된 증상과 언어표상을 '시니피앙'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구분한 증상과 언어표상을 라캉이 꼭 같은 것으로, 즉 모두 무의식의 의미를 드러내는 시니피앙으로 취급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삼분법은 시니피에(무의식적 사고내용)와 시니피앙(증상과 언어적 시니피앙)의 양대 축으로 환원되었다. 라캉은 여러 시니피앙 가운데에서도 언어가 가장 중요한 시니피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무의식의 의미가 이해가능한 것으로 독해되려면 무엇보다 언어의 형식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무의식은 언어와 같은 구조로 짜여 있다", 혹은 "무의식은 타자의 언술이다"라는 라캉의 잘 알려진 명제는 이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이 명제들은 무의식이 곧 언어적인 시니피앙임을 주장하기 보다는 무의식이 의미있는 것으로 현현되기 위해서는 언어의 형식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을 통해 새롭게 구성된 라캉의 언어이론은 무의식의 주체인 인간의 욕망구조를 드러내는 데 곧바로 적용된다. 라캉은 인간의 주체성의 생성과정에 관심을 가졌고, 이 과정을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하여 첫 단계를 '상상적 단계(혹은 거울단계)', 두 번째 단계를 '상징적 단계'라고 부른다. 두 단계를 거치면서 주체는 각각 상이한 과정을 거쳐 구성되지만, 공통적인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자와의 동일시를 통해서 주체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통해 자기자신의 몸을 통일된 전체로 인식하는 과정이 '거울단계'이다. 아이가 확인한 '자기'는 자기 자신 속의 내재적인 자아가 거울에 비쳐 나타난 것이 아니라 거울이라는 타자를 통해 비로소 구성된 자아임을 라캉은 강조한다. 따라서 거울단계는 자아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동일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라캉은 자기가 아닌 타자를 마치 자기 자신인 것처럼 오인하는 '상상적 질서' 속에서 자아의 구성이 완결된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자아는 '상상적 질서'에서 '상징적 질서'로 이행함으로써 좀더 성숙된 사회적 자아로 형성되어 나간다. 여기에서 라캉은 자아, 즉 주체는 근본적으로 타자를 통해, 즉 자기 자신과의 분리를 통해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라캉이 말하는 '상징적 질서'는 언어와 문화로 형성된 보편적 질서의 세계이다. '상징적 질서'는 의미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고 구분을 지으며 상품과 가치의 교환을 조정하고 가족관계의 규칙을 제정한다. 그런데 언어의 질서는 어린아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질서이다. 아이는 태어나기 이전에 벌써 타인들의 언술의 주체가 되었고, 태어날 때 이미 '타자의 언술'의 그물 속에 놓이게 된다. 이 언술의 그물이란 언어를 통해 매개되는 금지와 명령, 욕망과 기대, 의무와 가치 판단들의 체제를 뜻한다. 아이는 이 언술의 질서 속에 들어가며 이 질서에 의해 그 삶과 욕망이 조정된다. 즉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라캉에 의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의식한 나, 즉 의식된 자아는 타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만들어진 상상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또한 자아는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에도 현존하여 있다. 라캉은 "무의식은 타자의 언술이다"라고 말한다. 즉 나는 내가 스스로 의식할 수 없는 곳에 있기 때문에 나 자신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타자의 언술은 나를 사로잡고 있으며, 내가 스스로 만든 무의식적 언술의 결과인 증상들로 인해 나의 동일성은 흔들리게 된다.
라캉의 작업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주체 안에 내재한 타자성을 증거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체 안에 미만한 단절ㆍ공허함은 그러한 타자성의 표현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스스로 내부에 아주 낯선, 신기한, 이상한 측면이 본질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라캉은 자율적이며 이성적인 주체관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참된 말'의 달성을 정신분석학의 목표로 삼고 있다. 결국 라캉의 이론은 서구 철학에 깊이 깔려 있는 로고스 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라캉은 이것을 더 강화한 셈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은 본질적으로 언어를 통해 표현될 수 없다고 강조했지만, 라캉은 무의식조차도 언어적인 구조로 파악한 결과, 언어를 벗어난 어떤 현실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시켜 버리고 말았다. - 출처 : 사상사개설, 고영복 편, 1996.4.1, 사회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