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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어령의 말의 정치학] 평등(平等)
    좋은 글 2008. 8. 27. 15:21

    한국으로 귀화한 어느 외국인은 진도견을 보면 한국인의 특성을 알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리하고 순발력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닮은 것은 진돗개가 다른 개들과 섞일 때다. 다른 동물들처럼 어떤 종류의 개들도 무리를 이루면 싸움 끝에 서열이 생기는 법이다.
    우두머리가 나오고 그를 따르는 무리의 위계질서가 형성된다,
    그런데 진돗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싸움에 져도 다음날 다시 도전한다.
    악착같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른 개 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기개와 자존심이 강해 닭 머리는 되어도 쇠꼬리는 되지 않으려는 한국인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서로 장군을 하겠다는 바람에 졸병을 할 사람이 없어 전쟁놀이를 못한다는 것이 한국 아이들이라는 말도 있다.
    전문가의 권위가 안 먹히는 것도 한국 사회의 한 특성이라고도 한다. "너는 별거야"라는 심리가 남의 지식이나 경륜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분명 우리 마음 속에는 남에게 기죽지 않고 살려는 오기가 있다. 흉이 아니다.
    프라토가 인간의 덕목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최후의 것으로 꼽은 것이 티모스라고 하는 그 기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두가 왕 노릇을 할 수는 없다.
    염라대왕을 평등왕이라고 부르듯이 죽음 앞에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한날 한시에 죽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리더십보다 팔로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앞에서 이끄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뒤에서 남을 따라가고 받쳐주는 힘도 그에 못지않다.
    축구 경기에서 스트라이커의 화려한 경기는 옆에서 어시스트를 잘 해 주는 조력자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국 정치의 어려움도 여기에 있다.
    어느 국민보다도 평등의식과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라 그것을 다 같이 충족시키고 어우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이 평등은 스타트라인에 있는 것이지 골라인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결과에 대한 평등의식은 남이 쌓아올린 능력이나 노력을 부정하게 된다.
    억지와 시샘이 경쟁을 무질서로 이끌어 사회는 정체하고 불평은 고조한다.
    누구나 어렸을 때 달리기 내기를 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뛰다가 남에게 뒤처지면 "앞에 가는 놈은 도둑놈"이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진정한 티모스는 앞서가는 사람을 떠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긍지심이다.
    자유를 방종으로 착각하듯이 평등을 무등 무 서열로 오인하기 쉽다. 뱀의 머리가 강을 건너야만 꼬리도 따라서 강을 건넌다.
    머리와 꼬리가 강 한복판에서 서로 물고 늘어지면 그 자리에서 맴돌게 마련이다. 그것은 평등도 상생도 아닌 공멸일 뿐이다.
    호랑이도 이길 수 있는 진돗개의 영리함과 그 기개를 어떻게 다듬고 살려 가는가에 한국 정치의 내일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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