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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론
    참고 자료 2017. 12. 14. 12:20

    조론(肇論), 일심중도(一心中道)를 논하다


       <조론>은 승조가 20대에 걸쳐 집필한 논문집으로, 현상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를 논한 <물불천론(物不遷論)>, 본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논한 <부진공론(不眞空論)>, 현상과 본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론인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 깨달음의 결과를 논한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 등 총 4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승조는 <물불천론>에서 현상적인 존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전제를 지적한다. 하나는 그것들이 정지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가 동일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과거의 존재와 현재의 존재는 동일하지 않지만 현재의 존재는 과거의 존재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動과 靜의 이원론을 가지고 현상을 파악한다. 그러나 승조는 動도 靜도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존재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본다.



    "제법에는 현재가 과거의 시간으로 흘러가거나 과거의 시간이 현재로 흘러옴도 없으며, 시간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면서 전변함도 없다."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사는 몸도 처음 겪는 새로운 몸이다. 일어나고 스러지는 몸, 세계, 사물, 시간, 인과 모두 천류(遷流)하지 않는다. 모든 찰나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당시 관직을 포기하고 여산 동림사에서 수행 중이던 유유민(劉遺民. 본명은 유정지劉程之, 354~410)은 승조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품고 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어떻게 반야이면서 무지인가, 어떻게 주관적으로 진실한 옮음이 있는데도 옮음이 아닐 수 있으며, ‘일치하니 일치함이 없고, 옳아도 옳음이 없다’고 하는가. 한참 후에, 승조는 생각과 언어에 붙들린 유유민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비유하고 말한 것은 실유가 아님을 말한 것이지 아예 있지 않았음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비무라는 말은 단절된 무가 아님을 말한 것이지, 무가 아닌 유를 말한 것은 아닙니다."


     

       유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실유(實有)가 아님을 말한 것이지 실재도 없음을 말한 것이 아니고, 무가 아니라는 말도 단절된 무가 아님을 말한 것인데, 무가 아니라고 하면 곧장 유를 생각하고, 유가 아니라고 하면 곧장 무에 떨어지는 이분법을 지적한 것. 이런 사고의 메커니즘을 통해 ‘생각하는 나’는 점점 더 뚜렷해지고 강화된다. 승조가 격파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언어로 고정된 ‘그 무엇’이라는 실체를 부정함으로써 우리의 관습적 사유구조를 깨고 싶어 한 것이다. 분별적인 앎에 갇혀 세계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중생을 향해, 이 실상이 바로 空이요, 공을 직관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임을 깨우치려 했던 것이다.

      또한 <부진공론>에서는 자신의 공관(空觀)을 밝히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인연의 결합으로 생겨나며 인연조건이 사라지면 없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술로 지어진 사람과 마찬가지로 비유(非有)다. 그러나 마술로 생겨난 사람은 비록 실재하지는 않으나 환인(幻人)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무(非無)다. 이런 원리를 모든 존재에까지 확대하여 승조는 모든 것은 유도 아니며 무도 아니라는 중도(中道)에 도달한다. 이런 식의 논리는 <반야무지론>에서도 반복된다.

       <반야무지론>의 무지(無知)는 지(知)가 없는 무식한 상태가 아니라 지식의 본성인 언어적 사유분별을 넘어선 무분별적 지혜를 뜻한다. 이런 무분별적 지혜를 체득할 때라야 부처님과 같은 일체지자(一切智者)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일체지자의 경지가 열반이기 때문에 열반이 곧 ‘무명’이라는 것이다.



    "유는 무에 상대적으로 관계하여 있는 것이고 무의 관념은 유 그것과 관계 하에 성립된다. 따라서 유는 무로부터 생기고 무는 유로부터 생긴다. 유를 떠나면 무는 성립될 수 없고 무를 떠날 경우 유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나아가서 말하면 유무의 차별을 설정하는 짓은 삿된 견해이고 차별이 없이 동일하게 보면 자기와 저것은 둘이 아니다. 따라서 하늘과 땅은 나와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고 만물은 나 자신과 한 몸이다. "



       승조에게 無는 유의 부정이 아니라 유무의 차별 자체를 부정하는 개념이자 모든 상대적 차별을 부정하는 개념이다. 이 부정의 극치는 곧 절대무차별의 경지로서, 여기 이르러 “저것과 이것의 구분은 무너지고 사물과 자기는 하나가 되어 고요히 형상의 흔적이 없어진다. 곧 열반에 이른다.” 이것이 승조의 공관(空觀)이다. 이러한 논리는 <장자> 의 ‘만물은 하나’라는 주장과 아주 흡사하다. 장자는 모든 대립과 차별은 인위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세계는 평등하며 만물은 하나라고 주장했다. 승조 이전의 불교현학이 주로 현학으로 불교를 해석하거나 노자를 매개로 空에 접근한 데 반해, 승조는 반야경전에 입각하여 만물은 하나라는 장자의 사상을 이해했으니, 승조에 이르러서야 반야공과 함께 장자의 '만물일체'도 비로소 이해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교, 중국에 안착하며 대장정을 준비하다 


       나의 언어로 내가 이해한 세상을 설명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승조는 인도에서 들어온 중관철학을 깊이 있게 깨달아 당대(當代)의 현학적 사유를 돌파했다. '오랑캐의 종교’가 현학과 유학을 누르고 수당시대에 활짝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승조에게 힘입은 바 크다. 텍스트는 시대의 열망을 반영한다. 승조의 <조론>은 난세에 의탁할 곳을 찾던 지식인의 욕망에 부응하며 불교철학이 중국에 온전히 안착하게 만들었다.

      승조는 31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에 따르면, 그를 등용하고자 하는 황제의 권유를 거부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후회 없는 삶이었으리라.



    "사대(四大)란 애초 주인이 없는 것이요, 오온은 본디 공한데/ 하얀 칼날로 목을 치는 것쯤이야 한낱 봄바람을 베는 것에 불과하리라(四大元無主 五蘊本來空 將頭臨白刃 恰似斬春風)."



      승조가 마지막으로 남긴 게송이다.



    [출처] 9개월 주역강의의 제 1막이 끝나다. 조론의 시작|작성자 본향연우

    http://dhsdudtofpa.blog.me/22090820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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