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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역의 치료적 함의
    좋은 글 2016. 6. 9. 10:04

     

     

    ◈ 주역(周易)의 치료적 함의(含意)- 정병석(영남대) 주역 학술 자료실

    2014.03.27. 14:16

    복사 http://blog.naver.com/bhjang3/14020941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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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역(周易)의 치료적 함의(含意)

     

    정병석(영남대)

     

     

    [한글 요약]

     

    철학치료가 노리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하는 치료”, “자기 자신을 성찰하도록 만들어 주는 치료”, “자기 스스로 대답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치료”에 있다. 즉 철학치료의 핵심은 어떤 바깥의 힘이 가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숨어 있는 힘을 꺼내어 활동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런 철학치료의 각도에서 보자면 주역이야말로 철학치료적인 함의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은 영어로 ‘Book of Changes란 말로 번역되는데,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있고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나 자신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변화가 가져오는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서 외적 변화에 대한 관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주역은 바로 이런 성찰을 하게 만들어 주는 작용을 하고 있다.

    주역의 괘효(hexagram and lines)나 구절에 대한 해석은 그것을 보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해석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 놓고 있다. 여기에서 고정되어 있는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해석의 자유로운 개방성은 주역이 비록 점치는 것에서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결코 인간의 정해진 운명을 이야기하는 성격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사람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주어진 상황을 잘 살피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것을 주문하는데 있다. 즉 주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인간의 구속된 운명을 말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도록 만들어 주고”, “자기 스스로 문제의 해결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려는 데 있다.

    이런 주역의 성격을 Lou Marinoff는 “Plato not Prozac"에서 “인간의 내면적 작용을 거울처럼 비추어 주는 반성의 책”이라고 말하고 “주역은 당신으로 하여금 내면의 대답을 찾게 도와줄 뿐이다”라고 하였다. 주역이 가지고 있는 기능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64괘를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조언이나 명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결코 어떤 하나의 괘가 구체적인 어떤 행동을 직접적으로 지시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괘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재료로 삼아 자기 스스로 대답을 찾아 스스로를 치료해 가도록 만드는 일련의 단계들을 말하고 있다.

     

     

    주제어 : 주역, 철학 치료, 변화, 자기 성찰, 자기치료

    1. 들어가는 말

     

     

    보통 질병은 육체적인 병과 정신적인 병 두 가지로 크게 구분된다. 육체적인 병이라는 것은 후두염, 디스크나 암 등의 신체적 증상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을 말하고, 정신적인 병은 신경정신과적인 것으로 우울증, 편집증이나 정신분열증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질병에는 육체나 정신에 의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질병은 육체나 정신으로 생긴 질병 이외에도 환자가 가지고 있는 매우 사적(私的)인 가치관, 정체성이나 세계관과 관련되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병을 가지게 된 이유가 환자의 자기 정체성, 가치관, 윤리 등과 관련되어 있다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정신병으로 진단받고 약물을 타서 복용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약물 등의 자연과학적 태도를 통해서는 결코 이런 병을 치료해 주지 못한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이 앓고 있는 병은 결코 육체적인 병과 정신적인 병 두 가지로만 나눌 수 없다. 환자의 사적인 가치관이나 세계관과 관련되어 생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의 부류에 속하는 의학이나 신경과학의 차원이 아닌 철학을 통한 치료가 요구된다. 즉 설명의 방식에 입각하고 있는 자연과학적 태도가 아니라 이해의 방식에 입각하고 있는 인문학적 태도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이 앓고 있는 질병을 ‘육체적인 병’, ‘정신적인 병’ 이외에 ‘철학적인 병’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전에도 몇몇의 연구자들이 ‘철학상담’이나 ‘철학치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철학치료’라는 독립적 분과를 학문적으로 다룬 것은 거의 드물다. 철학 치료의 첫 걸음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해와 해석이라는 치료가 우선적이다. 이런 치료의 관건은 결코 외부의 어떤 약물이나 요법을 개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병을 가진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의 본질을 주체적, 능동적으로 이해하고 아울러 자신의 본질을 파악하도록 만든다. 이런 해석 활동이 바로 철학적 치료이다. 이런 치료의 활동으로 현재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번 문제도 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 논문은 유가의 가장 오래 된 경전 중의 하나인 󰡔주역󰡕을 통하여 철학의 치료적 기능 내지 함의의 가능성을 검토하려고 한다. 과연 󰡔주역󰡕이라는 다양한 해석을 양산한 경전이 현대에도 유용한 철학의 치료적 기능 내지 함의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유명한 심리분석학자인 융(C. G, Jung 1875-1961)은 이미 리하르트 빌헬름(Richard Wilhelm)의 󰡔주역󰡕에 대한 독일어 번역판의 서문에서 󰡔주역󰡕이 가지고 있는 ‘상담’이나 ‘치료’의 관점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주역󰡕이 가지고 있는 철학치료적 혹은 정신치료적 함의를 가장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 더욱 본격적으로 󰡔주역󰡕이 가지고 있는 ‘철학치료’의 관점을 분석하고 있는 책은 루 메리노프(Lou Marinoff)가 쓴 “Plato not Prozac"이다. 이 책에서 루 매리노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주역󰡕을 통한 철학치료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고, “󰡔주역󰡕을 참조하는 방법”이란 항목까지 부록으로 첨부하고 있다. 최근에 중국어권에 있어서 󰡔주역󰡕과 철학치료에 대한 연구도 점차적으로 활기를 띄고 있는데 그 출발점은 유명한 현대 신유학자 중의 한 명인 당군의(唐君毅)에서 출발하였다.

    당군의는 󰡔인생의 체험󰡕(人生之體驗), 󰡔인생의 체험 속편󰡕(人生之體驗續篇)과 󰡔병리건곤󰡕(病裡乾坤) 등의 저술 속에서 유가적인 방식의 철학치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 철학치료의 관점을 빅토르 프랑클(Victor Frankl)의 로고테라피(Logotheraphie)의 관점에 근거하여 처음으로 중국어권에 소개한 학자가 바로 부위훈(傅偉勳)이다. 당군의와 부위훈 이들 두 사람의 영향을 받은 타이완의 학자들은 이 분야에서 상당히 주목할 만한 많은 연구 성과들을 내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임안오(林安梧)이다.

    그는 󰡔중국의 종교와 의의치료󰡕(中國宗敎與意義治療)라는 저서를 중심으로 하는 10여 편 이상의 논문 속에서 중국의 종교와 철학에 나타난 철학 치료적 관점들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임안오는 유가의 철학치료를 의의치료(意義治療)로, 도가의 철학치료를 존재치료(存在治療)로, 불교의 철학치료를 반야치료(般若治療)라는 개념으로 명명(命名)하고 이들을 총괄하여 ‘의의치료’라는 것으로 지칭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임안오의 관점은 빅토르 프랑클의 로고테라피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고 기본적으로는 당군의의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타이완 같은 경우에는 의의치료 혹은 문화치료 등의 광의적 의미의 철학치료와 유가철학의 관련성에 대한 논의가 상당 부분 진행된데 비해 우리나라에서 철학치료의 관점에서 유가나 󰡔주역󰡕을 분석한 논의들은 거의 전무하다.

    2. 醫書로서의 󰡔周易󰡕과 自療

     

    철학을 통해서 고통을 치료하려는 철학치료는 심리치료나 정신과 치료처럼 모든 사람을 ‘질병화’하는 데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인을 위한 치료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철학치료나 철학 카운슬링은 기술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철학치료가 노리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먼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본질을 이해하고” 난 후 “자기 자신을 성찰하여”, “자기 스스로 대답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것”에 있다. 말하자면 철학치료의 핵심은 환자가 철학적으로 자급자족의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 마치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꺼내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적 치료는 어떤 바깥의 힘이 가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숨어 있는 힘을 꺼내어 활동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자료적(自療的)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료적’이라는 의미는 “인간 자신의 내면적 작용을 거울처럼 비추어 보는” 또는 “내면의 대답을 찾아내어” 스스로 치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어떤 유학자는 아예 유가의 경전들을 ‘의서’(醫書)로 간주하고 그 치료방법을 ‘스스로 치료하는’ ‘자료’(自療)를 말하고 있다. 손기봉, 황종희와 더불어 청대 초기의 3대 유가로 불리는 이곡(二曲) 이옹(李顒)은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언어문자에만 의지하여 날마다 도덕을 강론하고 성명의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구두성현(口頭聖賢) 또는 지상도학(紙上道學)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이런 구두성현이나 지상도학이 바로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병통이라고 말한다.

    학문을 하는 목적이 단순하게 문장을 외우거나 짓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학문의 궁극적 목적과 효용을 알지 못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이곡은 학문은 기본적으로 쓰임새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공리공담에 그치는 당시의 학문적 경향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곡은 철학을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고 치료하는 치료학의 관점으로 보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대표적인 유가의 경전들 예를 들면 사서, 󰡔주역󰡕을 포함한 오경 또는 송명 시기의 어록 등을 의사의 처방으로, 선진 이래 송명 시대의 성현이나 대유(大儒)들을 훌륭한 의사로 간주하고 있다. 이이곡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자, 안회, 자사, 맹자와 송나라 때의 주염계, 정이천, 장횡거, 주자 ....... 등은 모두 의사로 치면 모두 뛰어난 명의이고 오경과 사서 그리고 여러 유가들의 어록은 모두 의사들의 양방 아닌 것이 없다.

     

    이곡의 이런 언급은 유가철학 자체를 다분히 치료학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주체’, ‘경전’(텍스트), ‘유학자’(텍스트의 작자)를 ‘환자’, ‘의서’, ‘의사’의 치료적 관계에다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관계에서 행해지는 치료 방법이나 치료의 목적은 일반적인 거병(去病)을 위한 약물치료나 수술 등의 시술을 통한 병인(病因)의 제거의 방식과는 구별된다. 여기에서의 치료 방법은 이른바 ‘자가(自家)치료’ 즉 ‘자료’(自療)로 본성의 회복 혹은 주체 자체의 반성이 핵심이고 그 목적은 ‘성성’(成聖)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곡의 이런 관점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철학치료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응용할 부분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철학치료라는 각도에서 보면 어떤 다른 경전보다도 󰡔주역󰡕이야말로 철학치료적인 함의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은 보통 서양어로 ‘변화의 책’(Book of Changes)이란 말로 번역되는데, 이렇게 불리게 되는 기본적 관점은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있고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나 자신도 변화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삶의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변하지 않는 상태를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므로 각각의 변화가 가져오는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서 외적 변화에 대한 관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주역󰡕은 바로 이런 성찰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작용을 하고 있다.

    󰡔주역󰡕을 ‘우환의 책’(憂患之書)으로 보아, 󰡔주역󰡕에 나타나는 인간상을 ‘우환적(憂患的)인 존재’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주역󰡕의 괘효사에 나타나는 인간들이 대부분 매 순간마다 그 나름의 어려움과 고통 등을 가지고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 나름의 어려움과 고통’ 등이 바로 걱정하고 고민하는(憂) 대상인 ‘환’(患)이다.

    우환(憂患)이라는 말은 󰡔주역󰡕의 「계사전」에서 “역을 지은 사람은 우환이 있었나 보다?”(作易者, 其有憂患乎?)라는 말에서 나왔다. 우환은 정신이나 현실 상황 속의 고통이나 위기를 경각한 가운데에서 나온 것이다. 점을 통하여 설문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적인 안전, 현실의 세계로부터 소외된 불안과 의혹 속에서 결단을 구하려고 한다. 우환은 결코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포기하여 버리고 운명의 결정을 두려워하는 그런 정신 상태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자력으로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하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다른 외재적 신에게 자신의 결정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을 말한다. 이런 책임에 대한 두려움 즉 우환은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을 스스로 치유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일종의 합리적 두려움(rational fear)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주역󰡕이 말하려고 하는 우환은 스스로의 걱정과 고통이라는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여 해결하려는 일종의 자각적인 반응 혹은 자료적(自療的)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의 발생적 기원은 역시 점(占)이라는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역󰡕의 점에 대한 관점은 다분히 치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점을 치는 이른바 설문(設問)은 설문자 자신의 ‘의심’에 기초적인 도움 또는 자료를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 점이라는 행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설문자 자신의 주관적 판단과 반성이다.

    그러므로 󰡔좌전󰡕에서는 “점이라는 것은 의심나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 치는 것인데, 의심나는 것이 없으면 무엇을 위하여 점을 칠 것인가?”라 하고 󰡔순자󰡕에서는 “역을 잘 배워 익힌 자는 점치지 아니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을 점치는 것에 맡겨 버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피치 못할 선택을 할 경우 나 아닌 어느 누구도 결단을 할 수 없을 경우, 그 결단이 자신 이외 어떤 사람도 책임을 가지지 않을 경우, 문점(問占)은 매우 중요한 조언과 참고 자료의 역할을 하게 된다.

    󰡔주역󰡕에 나오는 어떠한 괘효사를 고르더라도 설문자들의 의식적인 마음은 그 텍스트에서 의미 있고 유익한 정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텍스트의 괘효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그것은 이미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 있던 것인데, 텍스트에 의해서 구체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거울처럼 비춰주므로, 그 속의 지혜와 당신의 지혜는 서로 공명한다고고 말하는 것이다.

    괘효의 상(象)과 사(辭)에 대한 해석은 그것을 보고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 놓고 있다. 고정되거나 이미 결정되어 있는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같은 괘효의 상과 사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그 괘효를 해석하는 주체가 가지고 있는 개별적 상황 또는 의지 등의 실제적 조건 등이 강하게 반영되고 개입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해석의 자유로운 개방성은 󰡔주역󰡕이 비록 점치는 것에서 발생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결코 인간의 정해 진 운명을 이야기하는 점서(占書)의 성격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사람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주어진 상황을 잘 살피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것(立命)을 주문하고 있다. 결코 숙명론적인 입장이 아닌, 스스로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고 확립하는 ‘입명’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왕부지(王夫之)는 “성인이 주역을 지은 것은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역의 참뜻을 넓히고 극진히 다하여,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하여 다른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는 수기치인의 모범으로 삼게 하려는 것이지, 결코 다만 점치는 사람들에게 운명을 점치는 길흉만을 이야기하려 한 그런 책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주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인간의 구속된 운명을 말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도록 만들어 주고”, “자기 스스로 문제의 해결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려는 데 있다.

    이런 󰡔주역󰡕의 성격을 루 메리노프(Lou Marinoff)는 “Plato not Prozac"에서 “인간의 내면적 작용을 거울처럼 비추어 주는 반성의 책”이라고 말하고 “주역은 당신으로 하여금 내면의 대답을 찾게 도와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의 이런 언급은 󰡔주역󰡕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이 가지고 있는 기능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64괘를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조언이나 명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코 어떤 하나의 괘가 구체적인 어떤 행동을 직접적으로 지시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괘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참고 자료로 삼아 반성적인 유비의 과정을 통하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본질을 이해하고”,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도록 만들어”, “자기 스스로 대답을 찾아가도록 만드는” 일련의 단계들을 말하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 우리는 󰡔주역󰡕 속에서 철학치료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 많은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정리해 보도록 하자.

     

     

    3. 卦爻간의 相關的 관계와 卦爻辭의 지혜를 통한 치료적 함의

     

    󰡔주역󰡕이 지니고 있는 철학치료의 함의는 괘효 간의 상관적 관련이나 괘효사 속에서 나타난다. 󰡔주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색은 역시 ‘변화’라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변화’의 관점들은 󰡔주역󰡕의 기본적인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괘효의 체계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왜냐하면 괘효의 구성 자체나 󰡔주역󰡕의 발생적 기원에 해당하는 ‘점법’(占法) 즉 ‘대연서법’(大衍筮法)의 형성은 모두 천지, 일월(日月)이나 사계 등의 변화하는 현상들을 관찰하여 그것을 본떠서 괘효에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역󰡕의 괘효 체계는 바로 변화하는 현상 세계의 모방 또는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역전󰡕에서 현상세계의 관찰을 통한 작역(作易)의 관점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옛날 복희씨가 천하를 통치하던 시대에 위로는 천의 현상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땅의 법칙을 관찰한다. ...... 가까운 곳에서는 몸의 형상에서 취하고, 멀리는 만물의 형상을 취하여서, 팔괘를 만들었다.

     

    본뜬 상이 천지보다 큰 것이 없고 변하여 통하는 것이 사시보다 큰 것이 없고 형상을 드러내 밝음을 나타내는 것이 일월보다 큰 것이 없다.

    「계사전」의 이런 언급들은 천지, 일월이나 사시 등의 현상들을 관찰하여 그것을 본떠서 괘효에 재현(再現, duplicate)하거나 반영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천지 사이의 모든 변화가 괘효와 괘효사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주역󰡕은 세계의 구조적 반영체로서 64괘 384효의 전개과정이 우주의 생성변화를 상징하며 서법은 역법(曆法)에 근거한 것으로 자연의 변화원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괘효의 체계는 우주의 생성변화뿐만 아니라 인간사의 문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역󰡕은 특히 천․지․인의 ‘삼재’(三才)를 강조한다.

     

    주역이라는 책은 넓고 커서 하나도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있는데, (그 중에는) 천도도 있으며 인도도 있고 지도가 있으니, 삼재를 겸해서 둘로 하였다. 그러므로 여섯이니, 여섯이란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삼재의 도이다.

     

    위의 󰡔계사전󰡕의 인용문은 󰡔주역󰡕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도․지도․인도이다. 전체 우주는 하나의 큰 상관적(相關的)인 세계 혹은 체계를 이루고 있고, 또 이 큰 체계 속에 여러 가지 다양한 체계들이 서로 의존하면서 존재하고 있는 통일적인 하나의 대 체계를 구성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전체 우주가 상관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인간 세계 역시 하나의 상관적인 통일체로 구성되어 있다. 여섯 개의 효를 각각 둘로 나누어 ‘삼재’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여섯 효를 인간 세계의 다양한 관계로 나누어 그들 상호간의 관계에 대해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역󰡕이 말하고 있는 상당 부분은 모두 이런 인간간의 관계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른바 상응(相應)이니 승(承), 승(乘), 정위(正位) 또는 부정위(不正位) 등의 개념들은 대부분 인간관계를 상관적인 각도에서 다양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인간 간의 충돌과 모순으로 인해 야기되는 고통이나 모순들에 대해 󰡔주역󰡕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다양한 해법과 충고들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주역󰡕의 이런 관점들이 시사하고 있는 바는 분명히 주의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인들이 가지는 스트레스나 정신적 질환의 상당 부분은 인간관계에서 나오고 그런 관계가 여러 가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초래한다. 이런 관점들을 󰡔주역󰡕의 64괘와 384효는 매우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괘효의 관계를 통하여 현실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 지혜를 제공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큰 문제점 중의 하나인 ‘우울증’, ‘왕따’나 ‘스트레스’ 등이 초래한 심각한 후유증 중의 하나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은 단순한 약물치료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현대 사회가 모든 개인들에게 부가시키고 있는 불안과 우울 이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기 위해서는 프로젝(prozac) 등의 항 우울제의 도움 역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참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도록 만들어 주고”, “자기 스스로 대답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주역󰡕의 모든 괘효와 괘효사는 만물의 상호 관계 속에 있는 하나의 단계 혹은 사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즉 하나의 괘효와 괘효사는 전체성 속에 있는 어떤 하나의 의미 연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체적 관계 속에서 관계성을 상실할 때 불안과 우울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개체와 개체, 개체와 사회 등의 상호 관계성이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주역󰡕에서 자주 등장하는 음양, 천지, 상하, 부부, 남녀 등의 양극성(兩極性)의 개념이 이야기하려는 것은 결코 등급적, 서열적이거나 억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대등한 개체와 개체간의 상호전환을 강조하려는데 있다. 유가의 천은 초월적인 개념으로 보이지만, 천은 지(天地)와 人(天人)과의 상호연관적인 대칭상관성을 말하는 양극성의 개념일 뿐이다. 특히 이런 관점은 󰡔계사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

     

    음과 양의 변화를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신묘하다고 한다.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아 서로 밀어서 변화가 생겨난다.

     

    천지의 큰 작용을 일러 생이라고 한다.

     

    󰡔주역󰡕에서 천지, 음양, 강유 등의 양극적 개념들은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규정하거나 지배하는 초월의 의미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하나가 존재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다른 하나가 필요 불가결하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음양이나 남녀 중에서 어떤 하나를 말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에 근거하지 않고는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개념의 양극성을 통하여 󰡔주역󰡕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우주 속의 모든 사물은 상호의존적이고, 상호관련성 속에서 부단히 변역한다는 사실이다. 사물간의 상호의존성이 의미하는 것은 모든 존재는 연속적인 통일체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는데 그 초점이 있다.

    󰡔주역󰡕이 강조하려는 것은 양극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보충한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갈등하는 의견들을 조화시키는 문제에 커다란 빛을 던져 준다. 배우자간의 혹은 부모와 자식, 직장 상사와의 의견과 갈등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은 양극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이해하게 만들어 자신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게 만들고 상대방에게도 자기 의견을 강요하려는 욕망을 억제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주역󰡕이 근본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이런 상호의존과 상호이해라는 태도는 인간관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주역󰡕의 自我更新에 나타난 치료적 함의

     

     

    리하르트 빌헬름이 번역한 󰡔주역󰡕이 1950년 미국의 베인즈(Cary F. Baynes) 부인에 의하여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융은 이 책에 서문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주역󰡕의 점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점을 친다고 하는 행위를 통하여 설문자 자신이 괘사 내지 효사에 대한 해석을 스스로 하도록 만드는데 이것은 결코 비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또 신비적인 것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점이라는 행위가 미래를 예측하거나 정해진 운명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거나 스스로의 해답을 찾아내는데 필요한 자료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50개의 시초(蓍草)를 헤아림으로써 우연히 이루어진 괘의 내용을 읽어낸다고 하는 것은 대저 어떠한 것인가? 비록 단순한 우연에 의한 개연성을 훨씬 넘어서는 규칙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규칙성을 증명하는 과학적 증거는 전혀 있지 않으며, 기껏해야 점치는 자의 성실성, 혹은 동기의 순수성이나 선의에 의한 보증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 결과를 믿느냐 마느냐는 질문자 자신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역󰡕이라는 책은 군자(君子)가 공부해야 하는 책이지 이해(利害)와 길흉(吉凶)이라는 눈앞의 문제들에만 관심을 두는 소인(小人)에게는 부적합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장난삼아 점을 치려고하는 사람에게는 역은 맞지 않으며 주지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성격의 사람에게도 적합하지 않다. 이와는 전혀 반대로 자기의 행위나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깊이 생각하기를 좋아하며 명상적이고 자성적인 사람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괘효의 상이나 사가 담고 있는 의미를 자신의 상황 속에 연결시켜 자신에게 필요한 조언 혹은 충고를 스스로 읽어 내어 자기화(自己化) 하는 것이 바로 󰡔주역󰡕의 점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이 가지고 있는 역할이나 작용은 대단히 빼어난 치료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치료적 기능의 핵심은 자기 치료 즉 자료적(自療的)인 것에 있다. 이런 󰡔주역󰡕을 읽는 독자가 파악하는 현실은 그 순간적 상황의 전체 속에 독자의 주관적인 즉 심리적 여러 조건을 이미 그 속에 투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주역󰡕의 어떤 챕터를 고르더라도 설문자의 의식적인 마음은 그 텍스트에서 의미 있고 유익한 정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그것은 설문자의 잠재의식 속에 이미 들어 있던 것인데 텍스트에 의해서 구체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주역󰡕의 지혜와 설문자의 지혜가 문점 환자 또는 설문자의 자기 회답(問占)을 통하여 공명(共鳴)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역󰡕의 점을 통한 치료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동전을 던지는 방법을 사용하든지 50개의 시초를 이용한 시초점을 통하여 현재 주어진 상황과 자신의 현실적 처지를 연결하여 볼 수가 있다. 󰡔주역󰡕의 각각의 괘효와 괘효사에는 설문자에게 충분히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다양한 내용과 덕목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주자는 󰡔오찬󰡕(五贊)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역을 읽는 방법은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용모를 엄숙하게 하고 단정히 앉아서 조심스럽게 임하고 모든 괘와 효에 대해서는 마치 점쳐서 얻은 듯이 하여 상과 사를 빌려서 나의 본받음과 법으로 삼아야 한다.

    󰡔주역󰡕의 상과 사에는 우리가 참고하여 본받아야 할 많은 내용들이 들어 있다. 이런 내용들에는 현재의 우리가 처해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다시 변화할 것이라는 전환 가능성의 문제이다. 결코 고착되거나 정적인 상태로 상황을 보아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이런 전환 가능성은 단순히 다른 외부적 요소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의지가 더욱 강하게 개입된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주역󰡕이 파악하는 현실은 그 순간적 상황의 전체 속에 주관적인 여러 가지 심리적 조건을 이미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융은 인과율과는 다른 동시성 혹은 공시율(Synchronicity)이란 개념으로 말한다. 이는 공간과 시간에 있어서의 복수의 사건 사이사이의 암합, 그 특이한 상호의존 관계를 단수 또는 복수의 관찰자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상태까지를 포함시켜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주역󰡕의 점사(占辭) 즉 괘효사를 통해서 나타난 64괘의 괘효사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의 이해”, “자신에 대한 반성”, “자기 스스로 해답 찾기” 등의 단서들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384 경우의 어떤 효가 나오더라도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自觀) 유익한 정보거리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역󰡕이 말하려고 하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자관은 더 이상 자신에 대한 단순한 ‘관찰’이나 수동적인 ‘반성’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자관’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자기반성과 ‘실존적인 자기해석’을 통하여 그 지평을 입체적, 다차원적으로 확대시켜 외부세계와 융합시키는 상호간의 의미연관성을 말하고 있다. 이런 입장들을 관괘(觀卦)의 六三 효사에서 말하는 ‘관아생’(觀我生)이라는 문제를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나의 생(生)을 살펴서 나아가고 물러난다.

     

    주자는 󰡔주자어류󰡕에서 “나를 본다는 것은 스스로 보는 것(自觀)이다. ‘과거에 행한 것을 되돌아보아 길흉화복의 단서를 자세히 살펴본다’는 말과 같은 어조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또 그는 ‘자관’을 리괘(履卦)의 상구 효사에서 말하는 “실천한 것을 되돌아보아 길흉화복을 자세히 살펴본다”는 말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실천한 것을 되돌아보아 길흉화복의 단서를 자세히 살펴보고 (그 근본에 따라서) 남김없이 온전하게 할 수 있으면 크게 길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에 따라 ‘자관’하여야 하는가? ‘되돌아 본다’는 말은 설문자 또는 환자 자신에게 보다 차원 높은 수준의 자아 치료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자신을 거듭나게 만드는 것으로 일종의 자아갱신(自我更新)이다. 예괘(豫卦)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上六 : 기쁨에 눈이 멀어지게 되었으나 변함이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예괘는 주로 안락함, 즐거움이나 기쁨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런 안락함이나 즐거움을 일방적으로 추구하면서 생기는 문제나 병통(病痛)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안락함이나 즐거움을 추구하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어떻게 그것들을 추구하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상적이지 않은 안락의 추구는 고통이라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고 안락 속에 늘 위기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생기는 심신의 병은 대부분 편안하고 안락함만을 지나치게 추구해서 생기는 것이 대부분일 정도이다. 이런 기쁨이란 문제는 자신의 이익 혹은 바램이 성취될 때 달성되는 심리적 만족을 말한다. 그러므로 안락함과 즐거움을 눈이 멀 정도로 지나치게 추구해서 생기는 마음이나 신체의 병은 ‘자기반성’(自反)을 통하여 스스로를 철저하게 갱신하여야 치유가 가능한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의 반성을 통해서만 차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주색에 지나치게 탐닉하거나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등의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에 눈이 먼(冥豫)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 자신의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한 자아갱신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즐거움에 탐닉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이 아파하고 마는 복통이나 치통과는 달리 자신의 가족이나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어 그들을 고통에 빠뜨리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것이다.

    이런 환자들의 치료에는 어떤 약물의 치료보다는 철학적인 상담이나 치료가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이런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서는 잘못된 가치관, 신념이나 습관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잘못된 가치관, 신념이나 습관을 바꾸어 변함이 있어야(渝) 더 이상의 큰 허물(咎)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구’(咎) 역시 일종의 병이다.

    실제로 󰡔이아󰡕(爾雅)에서는 ‘구’를 ‘병’(病)이라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병’은 신체적인 병 보다는 ‘허물’이나 ‘하자’를 의미하고 있다. ‘구’는 󰡔주역󰡕에서 모두 98번 출현하는데 딱 한 번 ‘위구’(爲咎)로 쓰이고 나머지는 ‘비구’(匪咎)가 한 번, ‘하구’(何咎)가 세 번 출현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93번은 ‘무구’(无咎)로 사용되고 있다. ‘무구’라는 말은 더 이상 병이 악화되지 않고 호전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거듭나게 만드는 자아갱신은 이전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의 행위를 다시 돌아보고, 자신의 생활방식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재생(再生) 혹은 ‘거듭나기’라는 반성적이면서도 창조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이것은 부단히 “자기 몸을 반성하여 거듭나려는” 현실의 구체적인 활동을 말한다. 󰡔주역󰡕은 ‘우환적 존재’ 즉 ‘결핍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현실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잘못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고통, 우환의 모습들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여,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개정하는 부단한 노력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 또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자각하여 자신 속에 들어 있는 내면의 해답을 통하여 다시 새로이 시작하고 출발하는 ‘자아갱신’은 반관(反觀)과 생생(生生)의 의미를 통하여 참된 자기의 재건(再建) 혹은 ‘갱신’을 가능하게 만든다. 󰡔주역󰡕은 자신에게 물음을 묻는 설문자 혹은 환자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 자신을 개정하여 자신의 병을 고치는 부단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매우 훌륭한 철학 카운슬러이다. 철학 카운슬러는 특별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반적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설문자 또는 환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탐구하고 해답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역󰡕은 사람들에게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길 안내를 제공할 뿐이다.

    즉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방법을 잊어버렸거나 그런 방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역󰡕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성격은 ‘인도적(引導的 : Orientative)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역󰡕의 관점은 세상사는 마치 포물선 같은 것으로 내림이 있으면 올라감이 있기 마련이라는 점을 자각하게 만든다. 이런 관점은 특히 길흉의 전환가능성이란 점을 통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주역󰡕의 384효에는 항상 판단개념이 붙어 있다. 384효에 가치의 기준과 근거를 제공해 주는 가치판단의 개념들에는 길, 흉, 회(悔), 린(吝), 무구 등이 있다. 길흉 이외에 회와 린은 모두 작은 과실을 말하는 것으로 회는 잘못을 저지른 후에도 마음으로부터 그 과실을 보충하여 선으로 향하려는 것이고 린은 흉으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길흉개념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자유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미 결정되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주역󰡕의 점으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묻는 것은 본래는 미신적인 것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계와 자기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포함하고 있다. 길흉은 자신의 주도적 노력 여하에 따라 ‘추길피흉’(趨吉避凶 : 吉을 추구하고 凶은 피함)하고 ‘봉흉화길’(逢凶化吉 : 흉을 길로 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업상의 위기, 이혼이나 파산, 도덕적 딜레마, 정신적인 우울증 등을 마음이나 정신의 안정을 통해 치료하는 경우 이런 낙관적인 ‘추길피흉’과 ‘봉흉화길’의 관점은 분명히 유효할 것이다.

    󰡔주역󰡕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설문자가 모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단 그 상황 안에 들어섰다면 최선을 다해 그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주역󰡕에 의하면, 만약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음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오르막 너머에는 또 다른 좋은 상황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늘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나쁜 상황도 잘 활용하게 해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5. 맺음말

     

    󰡔주역󰡕은 바깥 세계의 변동하는 모습을 괘효의 상을 통해서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재현된 모습은 단순한 외부 세계의 모사나 복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역󰡕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내면을 거울처럼 비추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역󰡕은 그 책을 읽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다. 󰡔주역󰡕에 물음을 던진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엄밀히 말해서 󰡔주역󰡕이 가지고 있는 치료적 함의는 물음을 던지는 자 혹은 환자 스스로 내면의 대답을 찾도록 인도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주역󰡕은 가장 훌륭한 ‘책자치료’ 혹은 ‘경전 치료’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치료나 정신 치료의 경우에 있어서 󰡔주역󰡕을 응용하는 경우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을 필요는 없다. 하나의 효나 하나의 괘가 그 물음을 묻는 환자나 설문자에게 충분한 생각 거리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타난 󰡔주역󰡕의 특정한 괘효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논의의 초점은 그 상황에 처한 환자나 설문자 자신의 현명한 행동 방식에 있다. 나타난 괘효사는 하나의 자료로서 설문자의 특수한 상황과 결합되면서 설문자 자신에게 필요한 결과를 산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의 바람직함 혹은 바람직하지 못함은 환자나 설문자의 자유로운 생각이나 말에 의해서 결정될 뿐이다.

    󰡔주역󰡕은 결코 환자의 병환을 직접적으로 치유하는 특효약과 같은 역할이나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주역󰡕이라는 ‘책자’가 가지고 있는 ‘치료’의 주성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분석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주역󰡕은 기본적으로 ‘인과율’이 아닌 ‘우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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